위기의 부부, 신혼을 생각하다 (렘 2:1-8)

2절은 '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고 개정역은 번역했는데, 원어에 '위하여' 라는 말은 없다. 다만 여호와께서는 '내가 너를 기억한다 זָכַר 자카르' 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그 옛날 광야 시절, 젊었을 때, 신혼 때의 사랑에 대한 기억인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을 따랐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을 거역하고 따르지 않았음을 얘기하는 구절들이 더 많은 것으로 기억된다.

예를 들어,

(신 9:7, 개역)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행 7:42, 개역)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행 13:18, 개역)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히 3:8, 개역)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등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광야 시절을 신혼의 때라 부르신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신다. 생각해 보면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즉 아무 것도 없는 광야는 주님 외에는 다른 것을 볼 수 없는, 따라서 상황적으로 신혼의 때였다.

3절은 '이스라엘은 주께 거룩이었다 그리고 그의 성장의 첫 열매들이었다' 라고 말씀하는데, 이스라엘은 주 앞에 구별된 존재였고, 그의 성장 (increase, 소출) 즉 그가 창조하시고 그 창조 안에서 나온 것들 중에 첫 열매들이었음을 말씀한다. 생각해 보면 아담이 있었고, 아브라함도 있었는데, 굳이 이스라엘을 거론하신다. 그것은 아담이나 아브라함 처럼 단수의 사람이 아니라 복수의 '첫 열매들'을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이스라엘과 더불어 신약 시대 교회도 마찬가지인데, 특히우리가 자주 '초대교회'를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첫 교회 즉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정말 천국 자체였다고 생각될 만큼 놀랍고 아름답고 달콤한 시기였다. 거기에는 성령의 부어지심과 충만하심, 그리고 그 다스리심이 계속되었고 신앙의 권속들의 자기 희생으로 가득했었다.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 거기에는 정말이지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 우리는 그 나타난 모습들을 동경할 수 있지만, 그 근본을 다시 기억하고 주님과의 첫째 되는, 그 으뜸 사랑, 처음 아가페를 회복해야 한다. 사람과 달리 주님은 매일 더욱 새로우시기 때문이다.

그 처음 혹은 으뜸 아가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듣 4절)'는 것이다. 그 음성을 들음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의 현재 주님을 추구하지 않는, 원래로부터 어그러진 모습을 정확히 보고 회개하는 것이다 (5-8절). 주님은 우리의 법적, 그리고 영적인 남편이시다.

주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주님에 대한 사랑 그 으뜸 아가페를 회복하게 하소서. 우리가 소유한 혹은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들이라도 모두 헛된 것임을 알게 하셔서 그 아가페를 귀히 여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