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말씀 중에도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은혜의 하나님 (렘 2:29-37)
원래 고대 히브리어는 시제가 뚜렷하지 않다. 단지 크게 완료와 미완료만 있을 뿐인데,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회복한 후에 과거 현재 미래 등 시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 히브리어는 과거 성경의 그것과는 시제면에서 차이가 있다.
오늘 말씀 구간에도 이 두 시제가 번갈아 가며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29절 '왜 너희가 나와 싸우느냐 (원어)'의 '싸우다'는 미완료이고 '너희 모두가 나를 대적해 잘못을 범했다'의 '범하다'는 완료형이다. 보통 완료는 과거를, 또 미완료는 미래로 이해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이렇게 시제가 뚜렷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히브리인들 혹은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오직 현재가 중요함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후에 헬라어 '카이로스' 그리고 '아오리스트' 시제와도 연결된다.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미래 일을 이미 이루어진 것 처럼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계시록 사건은 '크로노스' 안에서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카이로스'로서는 이미 이루어진 사건들이다.
이러한 면은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데, 오늘 말씀에 여호와께서는 순종하지 않고 주를 떠난 이스라엘에 대해 아직도 '내 백성(31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와의 관계를 일깨워 주신다. 35절은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미완료)'고 말씀하셨는데, 원어로는 29절 '싸우다'와 같은 단어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고 또 싸우실 것이며, 또 우리가 주를 떠나 다른 것들을 의지할 때 '수치를 당할 것'과 '형통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시지만, 단지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의 그 끓는 사랑, 그 '아갑'의 사랑을 나타내 주시는 것이다. '여호와께 돌아가자'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주님, 주의 백성이 주를 떠나 돌아서도 주께서는 부르시고 용서하시며 오셔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주는 은혜로우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하지만 주의 심판의 날은 올 것이고 주를 대적한 모든 이들은 분명 심판 받을 것을 압니다. 우리 마음을 돌이키시고 주의 살아계심을 알고, 주님을 주인으로 온전히 모시도록 우리를 인도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