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가운데 소망을 충만하게 하심 (렘 3:1-18)
1절은 여호와를 떠난 이들이 다시 여호와께 돌아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특히 3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창녀'로 비유하며 온 땅에서 행음했음을 폭로하시고, 북이스라엘이 간음함으로 패망했고 남유다는 그것을 보았지만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했다고 말씀한다 (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돌아옴'에 대해 말씀하시고 (7, 10절) 급기야는 '돌아오라'고 명하신다 (12, 14절). 특히 12절은 이미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돌아오라고 하시는데,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선포하신다.
주의 백성이 온전히 주를 따르고 경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세상에 미혹 당하기도 하고 실족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죄를 자복'하며 주의 음성을 듣고 돌아가야 한다. 죄를 짓는 것이나 배역하는 것은 매우 악한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신 분이신데, 이제 신약 시대에는 돌아오면 죄를 사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으로 이미 죄를 다 사했으니 돌아오라 하신다. 1절에는 버린 아내를 다시 받을 수 없다고 하셨지만 14절은 주의 백성들에 대해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고 말씀하며 돌아오라 하신다.
흥미로운 것은 16절인데,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성전에 대해 '영원'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말이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따라서 '언약궤' 역시 영원이라는 말과 함께 쓰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새로운 언약 (렘 31:31, 눅 22:20, 고후 3:6, 히 8:13 등)'을 말씀하시는데, 그렇기 때문에 원래 광야에서 주셨던 언약궤는 그 유효기간이 있다. 그래서 17절 예루살렘이 온전히 회복될 때 더 이상 언약궤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거에 만들어진 언약궤는 이제 어디에 있는지 더이상 찾을 수 없고, 이미 3500년 된 원본이 아직도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약궤는 주께서 함께 하시고 그의 백성들이 주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매개체 즉 주를 향한 소망이다. 우리는 소망으로 산다. 미래에 대한 소망, 영원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삶에는 의미가 없다. 오직 주를 통해 아버지께로 올 수 있는, 우리 안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의 소망이시다 (골 1:27).
우리의 참된 소망이신 주님을 주목하는 하루 되기 원합니다. 이제 없어질 언약궤가 아니라 우리를 성령 안에 인치시고 주께서 영광의 소망 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이 비밀을 더 묵상하며 아버지께 당당히 오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