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 사람, 우리 자아를 부인하고 갈아엎음으로 새롭게 됨 (렘 4:1-10)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3절에는 '너희 묵은 땅을 갈고' 라는 말이 있고 곧 이어 4절에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라고 하는데, '묵은 땅'은 경작하지 않고 놀려서 굳어진 땅이다.  이런 땅에 파종을 하기 위해서는 갈아 엎어야 하는데, 흥미롭게도 '묵은 땅'의 원어는 '니르'이고 '갈다'의 원어 역시 '니르'로 동음이어다.  원어로 이 부분을 '니루 ㄹ라켐 니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부분 역시 언어유희로 들린다.  호세아 10:12에도 동일한 문구가 나오는데, 묵은 땅에 파종하면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씨는 뿌려지고 어느 정도 싹이 돋지만 주님 말씀 처럼 후에는 기운이 막혀 결실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묵은 땅'은 바로 뒤 4절 '마음'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시는데, 원래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에 의해 태어난지 팔일 만에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는다.  문제는 어릴 때 받은 할례이기 때문에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할례는 타민족들과 구별되는 육체의 표시 혹은 종교적 의미로만 남았지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 주님께서는 '마음 가죽을 베'라고 하시는데, 이 '마음'이라고 번역된 말은 매우 함축적인 말로 원어로는 'ㄹ레밥' 혹은 'ㄹ레브'이며 '마음' 외에도 '속 사람, 뜻, 의지, 생각'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분노, 가슴, 깨어있음, 생각함, 용기, 갈망, 이해'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된 말이다.  알 수 없는 사람의 속 부분이고, 결국 이 '마음'은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이라기 보다는 신약의 '혼'을 의미하는데, 바로 우리 자신이며 특히 죄성으로 가득한 우리의 슬픈 자아이다.  이러한 우리 자아의 가죽을 베라 명하신다.  이것은 신약적으로는 바로 자아를 부인하고 죽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주님의 말씀의 씨가 우리 안에 뿌려지고 갈려진 마음에 자라 결실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종교를 떠나지 못했던 삶이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종교적 배경이 그들의 마음은 완악하게 만들었다.

주님, 오늘 우리 마음을 갈아 엎기 원합니다.  주의 영으로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속 사람이 변함 받음으로 강건케 되게 하소서.  주님을 인정하며, 주께 찬양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