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바라 보는 심판 (렘 4:23-31)

오늘 말씀에는 소망을 찾을 수 없어 보인다. 모두 심판과 멸망의 예언이다. 하지만 23절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부분에서 놀라운 것을 엿볼 수 있는데, '땅' '혼돈' '공허' 라는 말과 '하늘에는 빛이 없'다는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바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한 창세기1장 2절인데, 이어서 3절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로 연결된다.

창세기 1장은 성경을 여는, 정말이지 너무도 중요하고 신비로운 장이지만 그 번역에 있어서 너무도 미흡했다. 이것은 비단 한글만이 아니라 그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킹제임스역도 마찬가지인데, 히브리어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지 않고 인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번역을 했기 때문이다. 킹제임스는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라고 번역했는데,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was without form, and void' 이다.

'was'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이미 땅이 (혹은 땅을 이루는 물질이) 존재했고 그것이 '혼돈하고 공허'했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하는데, 이 was는 원어로 הָיְתָ֥ה 로 '이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되다' 라는 의미 역시 강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동일한 단어가 3절 '빛이 있었다' 부분만이 아니라 5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에서 '되니'로 두번 쓰였다. 즉 모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에서 이 동일한 말이 쓰여서 1장에는 모두 27번이나 나오는데, 2절에는 '었다, was'로 번역되었다. 사실 우리 말 모든 '되었다 (5, 7, 8, 9, 11, 13, 15, 19, 23, 24, 29, 30, 31)'가 전부 동일한 이 הָיְתָ֥ה 인데, 영어킹제임스역에서는 became으로 번역하지 않고 모두 was 혹은 let it be 등으로 번역했다. 분명한 것은 이 단어가 창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에서도 쓰였는데, 앞의 식이라면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었더라'로 번역해야 했다.

그래서 창 1:2은 '그리고 그 땅은 혼돈과 공허가 되었다 그리고 어두움은 그 깊음의 그 얼굴 위에, 그리고 신들의 그 영은 그 물들의 그 얼굴 위를 푸덕이고 있었다' 정도로 번역되어야 한다. 창세기 1:1은 하나님께서 '그 하늘들과 그 땅을 창조하셨'음을 놀랍고도 분명하게 선포하지만, 2절은 '그리고 (혹은 그런데) 그 땅은 혼돈과 공허가 되'어 버렸음을 바로 설명한다. 이러한 내용은 창조의 신비로움이나 아름다움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데,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욥 38:7)'는 말씀을 보면 원래 하나님의 창조는 눈부시게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문제는 특히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사탄과 당시 땅에 존재했던 우리가 모르는 생명체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에 따라 땅이 노아의 홍수 처럼 물로 뒤덮는 심판을 받아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혼돈과 공허'가 되었는데,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를 말한다.

오늘 말씀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며 이 동일한 두 단어 '토후와 보후 ('와'는 and)'를 말하는데, 이미 창세기에서 함께 쓰인 이 두 단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바로 뒤에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리고 신들의 그 영은 그 물들의 그 얼굴 위를 푸덕이고 있었다)'로 연결되는데, '엘로힘'의 '그 영'은 그 심판 받은 물로 덮힌 지구 위에 운행하며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하기도 하시지만 그 가운데 새로운 것을 창조하시고 다시 만드시며 회복하신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소망이다. 그러한 회복은 이제 부활로 이어지며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영광의 소망이시다.

주님, 심술궂게 심판만 하는 나쁜 신이 아니라, 주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시고 또 회복하시며 생명 주시고 우리에게 소망되심을 감사합니다. 주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주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