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계시의 특수 상황 그리고 그 적용 (렘 7:29-8: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는 '계시'에는 소위 일반 계시와 특수 계시가 있다고 한다. 일반 계시는 자연 자체와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잘 관찰할 때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만물이 창조된 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없기에 소위 '특별 계시'라는 성경 즉 말씀을 주셨고, 그 핵심은 그리스도시다.  문제는 자연 현상은 그 법칙이 있어서 그에 따라 주어진 범위 내에서만 발생하지만, 소위 특별 계시에는 자연의 이치를 초월하는 기적들도 발생하고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명령을 하시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 자체가 특별 계시인데, 후에는 자신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신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자 (창 22:1, 히 11:17) 명하신 것이며 매우 특수한 예이다. 그 외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바치라는 명을 하지 않으셨는데, 오늘 말씀 31절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고 기록하며 그렇게 잔인한 명령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도 아니고 그 마음에 생각하신 것도 아니라 말씀한다. 혹여라도 아브라함의 케이스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만 국한된 특수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하신 특별한 명령이었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죽음을 면하게 하시며,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번제로 바치는 이유는 신을 향해 자신들의 헌신이 얼마나 큰지 떠벌리기 위한 과시욕이며 자기 만족이다. 참된 신은 그러한 일을 선하다 하지 않으신다. 이러한 면에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멸한 예나 동성욕자들 혹은 그 외 다른 죄인들에 대해 죽음을 명한 것에 대해 동일하게 우리 현재의 상황에 적용할 수도, 또는 그렇게 주장할 수도 없다. 그러한 명령은 특수한 상황과 특별한 족속 즉 이스라엘 에게만 주어진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 명하신 것 역시 그러한 면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손이나 발을 찍어 버리라 혹은 눈을 빼버리라는 등의 명령은 지금 우리에게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고전 6:20) 말씀이 우리가 현재 듣고 적용해야 할 명령이다.

오늘 말씀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인데, 이러한 심판의 말씀이 있다고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은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먼저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 우리가 구원을 잃을까 두려워함으로 더욱 순종함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만유의 주시며 만군의 주 앞에는 겸손함으로 경배하는 것 외에는 없다. 주는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주님, 주님을 두려워함으로 경배합니다. 주를 만나는 그 시간이 놀랍고 귀한 시간입니다. 제가 마음이나 생각이나 행동으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게 하소서. 손발이나 눈을 상할 정도로 심각한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지만 그 보다 주님께서는 놀라운 것을 우리를 위해 계획하셨고 허락하셨으며 누리게 하심을 압니다. 주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