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전반적인 타락에 대해 주의 종으로서의 합당한 반응 (렘 8:13-22)

찬송가 '눈을 들어 하늘 보라'의 가사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만은 생명수는 말랐어라'가 요즘 자주 마음 속에 떠 오른다.  교회들이나 인터넷 또 그 외 여러 다른 방법으로도 외치는 소리는 적지 않지만 정작 사람을 살리고 시원케 하는 생명수는 마른 느낌이다. 물론 본이 되는 교회들도 있겠지만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타락했다는 느낌인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개혁을 외치거나 소리높여 비판하는 이들은 적지 않지만 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원어에는 오늘 13절이 '아쏘프' 즉 '반드시' 혹은 '확실히'라고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을 떠난 그의 백성들에 대해 돌이키지 않는 심판이 있을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대적하여 범죄했기 (14절)' 때문이다. 16절은 원어로 말 소리가 들린 것과 땅이 진동한 것은 완료형 동사지만 그들이 이르는 것과 주민을 삼키는 것은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시간적으로는 아마도 아직 이러한 심판이 임하기 전이지만, 13절 '반드시'라고 하셨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슬퍼한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지만, 자신은 이러한 타락의 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 비판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다만 슬퍼한다. 그는 자신을 심판자의 위치 즉 하나님의 자리에 놓지 않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그의 백성들에 대해 슬퍼한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슬퍼했는데, 단 한번 그들에 대해 노함으로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선 것이다. 그래서 바위에게 말하라 명하신 것을 듣지 않고 바위를 다시 쳤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 죽으실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한번이면 족하고 그것으로 다 이루셨다. 이제 우리는 영적 지도자들이건 아니면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건 상관없이 다만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야 하고, 타락한 상황에 대해 불평하거나 심판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겸손함으로 슬퍼하며 주께 아뢰야 한다.

21절은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라고 말하는데,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지만 신앙 공동체인 유다 백성들이 상함으로 마치 자신 역시 상한 것 처럼 슬퍼했다고 말한다. 참된 주의 종은 슬퍼할줄 아는 사람이다.

주님, 비판은 하기 어렵지 않음을 압니다. 저 역시도 기독교의 부정적인 모습들에 실망하고 짜증내며 불평할 때가 많지만 결국 비판으로만 끝나고 정작 슬퍼함으로 자신을 구비하지 못하는 제 자신의 천연적인 모습 역시 다르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주의 마음을 배우게 하소서. 주께서 눈물 흘리셨던 그 눈물의 의미를 저희로 깨닫게 하소서.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