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구원은 있다 (렘 21:8-14)
종교개혁을 통해 소위 '다섯 솔라 (오직)' 즉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라는 표어가 시작됐는데, 그래서 마치 '행위'는 별 상관이 없다고 인식하게 되는 과오를 범하게 되었다. 개역성경은 특히 롬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리고 롬 4:13도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번역해서 모두 원어에는 없는 '오직'이라는 말을 더했다. 이러한 구절들을 자꾸 '행위 대(vs) 믿음'으로 해석해서 문제가 되는데, 로마서나 그 외 모든 구절들이 말하는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의 법 (혹은 원리)' 혹은 '그 법' 즉 율법을 말하고 있다.
짧게 말하자면 구원은 궁극적으로 행위로 나아가야 하며 행위로 열매를 맺는다. 고전 3:15에는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 기록하는데, 오늘 말씀 9절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고 말씀한 부분과 연결된다. '가운데 (dia)'는 '통하여'를 의미하는데, 구원을 받을 때 불을 통과하면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이 불에 타는 것들 즉 피상적이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얄팍한 행위들은 모두 불살라지고 주님 앞에 보일 것이 없게 된다. 물론 신앙인들의 행위는 그 드러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사람의 순종을 통해 삶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대가를 지불함으로 가능하다.
성경에서 '에르곤'이라는 헬라어는 '일' '행위' '역사' 등등으로 번역됐는데, 수 없이 많이 나오는 말이지만 특히 계시록에 두드러진다. 계 2:5은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3:8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리고 3:15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기록한다.
주님, '오직'은 오직 주님만임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