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주어진 위대한 믿음 (유 1:1-10)

어릴 때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고, 더우기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시인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진리는 종교적인 교리 이상으로 매우 신비롭게 다가오는데, 가볍게 받을만한 주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진리와 이에 대한 고백의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이 있기 때문인데, 과연 기독교인들 중에도 주님의 신성을 어렴풋이 이해라도 하고 온전히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이러한 믿음을 위해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바로 오늘 말씀하는 '공통 구원'이 이와 관련이 있다.

유다는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형제였는데, 어릴 때 부터 옆에서 주님의 성장을 목도한 인물로서 자신의 형이 실상은 하나님이시라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를 경험한 인물이다. 그래서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예수님의 종으로 말하는데, 바꿔 말하면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시인하는 것이며 4절은 분명하게 예수님을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그리고 '그리스도'로 선포한다.

따라서 공통적인 구원에 관한 기본 진리는 바로 주님의 신성인데, 5절은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번역한 개정역에 비해 원어에는 놀랍게도 '주께서' 라는 부분이 '예수께서' 라고 되어 있다. '주'라고 하면 약간은 불분명하지만, 과거 출애굽 사건이 단지 '여호와'의 구속하심이 아니라 바로 '그 예수'께서 하신 것으로 말한다.

3절은 이 '단번에 전달되어진 믿음에 대해' '힘써 싸울 것을 권면'하기 위해 쓴다고 하는데, 4절은 그 이유가 '어떤 사람들이 끼어 들어왔'고 그들은 '불경함으로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있으며 유일한 주권자이며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단번에 전달되어진 믿음' 혹은 '공통 구원'과 '음행' 혹은 '색욕'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 혹은 하나님을 믿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은 부인하는 자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은혜 조차도 색욕거리로 바꾸는데, 6절은 그러한 이들과 연관하여 비밀을 말씀한다. '천사들 또한 그들 자신의 경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이들을) 큰 심판의 날 안으로 영원한 사슬에 (대해) 어둠 아래 지키셨습니다'라고 기록하는데, 천사들이 자신의 경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사건은 단지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적인 경계 뿐만 아니라, 7절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위의 다른 성들이 마찬가지로 그들과 음란을 행했고 다른 육신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의 본보기가 된 것 처럼' 이라고 하는데, 눈여겨 볼 구절은 '그들과' 라는 말로, 소돔과 고모라의 음행이 단지 그들 가운데 색욕이나 동성욕 뿐만이 아니라 하늘의 타락한 천사들 즉 '다른 육신들'과도 교접했음을 엿볼 수 있다.

유다는 '공통 구원'을 말하면서 이러한 음행을 언급하는데,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다른 육신을 좇는' 음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요즘은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기도 힘들어 할만한 주제이지만,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는 구절의 의미를 알았을 것이고, 창 6:4, 욥 1:6 2:1 38:7 등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구절이 천사들을 의미하는 것임에 동의했을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은 마귀를 따라 자신들의 색욕을 위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혔는데, 이것은 인간을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위반된다. 이러한 타락한 천사들의 색욕을 인간들도 본받게 되면 '공통 구원'이 현실적으로 감염되는데, 이제 현 세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니면 우리가 생각없이 즐기는 방법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존재에는 질서가 있는데, 9절은 '그런데 천사장 미가엘이 마귀와 논쟁할 때 그 모세의 몸에 대해 논쟁했는데 (마귀에 대해) 감히 모독하는 판결을 못하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라고 말했습니다' 라고 하며 미가엘이 '천사장'이었음에도 마귀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고 그 주어진 질서 안에서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이라고 밖에 말하지 못했지만, 그에 비해 육신의 쾌락을 좇는 이들은 몰지각해져서 '무엇이든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모독'한다고 10절은 말한다. 보이지 않기에, 보지 못했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모독한다. 그래서 '몰지각한 짐승들처럼 천연적으로 이해하며 이러한 것들 안에서 멸망하고 있습니다'라고 기록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이 공통적인 믿음과 구원은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신성 또한 온전히 소유하신 분이심을 말하는데, 그러한 분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러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통해, 그 안에서 또한 그를 통해 우리는 '아버지께로 올 수' 있고, 이는 우리 또한 주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신비인가!

주님, 주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지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가 여기에 있고, 이것은 오히려 '공통 구원'임을 봅니다. 이 문제를 더 깊이 묵상하며 그 의미를 깨닫고, 그 구원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