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가라지들 (유 1:11-16)
그 어느 교회든 문제 없는 교회는 없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온전히 거듭나서 자신의 십자가를 항상 지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의 모습 대신에, 거듭나지도 못했지만 신자인 척 하는 소위 '가라지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아예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소위 '베이비 신자'들 조차 되지 못한다. 지금 유다는 이러한 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영적 원리도 이해하거나 믿지 않으려 하는데, 유다는 11절에 세 단계에 걸친 그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먼저 '그 가인의 길 안에 그들이 떠난다'고 하는데, 가인의 길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 정하신 길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는 길이다. 몇 년 전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은 'It's not about you'라고 시작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먼저 '회개'해야 하며, 이는 모든 것이 '나'로 출발하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삼지도 않으며 '내'가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두번째는 '삯으로 인한 발람의 어긋남'인데, 소위 '더러운 이를 탐'하는 문제다. 더러운 이를 탐하는 것은 물론 그러한 더러운 삯을 받고 어긋나게 예언하는 것으로, 이는 교회 내 소위 일반 '평신도'들이 아니라 오히려 영향력있는 리더십들 중에도 이러한 '가라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인의 길'에 대해서는 '떠나'지만, 이러한 이들은 '몰려간다'. 세번째로는 '그 고라 (족속)의 반역 안에서 멸망하는' 이들인데, 결국 이러한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를 대적해 반역하며 멸망한다. 이러한 세 가지 동사 즉 '떠나다' '몰려가다' 그리고 '멸망하다'는 마치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즉 '꾀를 따르다' '죄인들의 길에 서다' 그리고 '자리에 안지 않는다' 라고 기록한 시편 1편 1절과도 비슷하다.
12절은 원어로 '이들은 여러분의 아가페들 안에 (있는) 이들이며' 라고 되어 있는데, 성경에서 '아가페'가 복수로 되어 있는 유일한 구절로서 소위 말하는 '애찬'으로 이해한다. 원래 애찬과 성찬은 구별이 분명하지 않은데, 성찬 혹은 주님의 만찬은 거듭난 성도들만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룩한 성도들의 공동식사에 두려움 없이 그들은 끼어서 함께 먹는데, 겉으로는 성도들과 다름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영원 안으로 어둠의 흑암이 예비된 떠도는 별들'임을 밝힌다.
교회는 파라다이스나 천국이 아니다. 우주적인 교회 혹은 비밀스러운 교회는 온전하고 영광스럽지만,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는 주님 말씀처럼 '가라지들'도 분명 존재한다. 내가 혹 그러한 가라지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주님, 유다가 네번이나 걸쳐 말한 불경건함이 나의 모습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며 주의 그 은혜의 중함을 깊이 묵상하기 원합니다. 주의 열매를 내는 주의 알곡으로서 주 앞에 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