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 예수 (시 116:12-19)

12절 '은혜'로 번역된 말은 구약에 단 한번 나오는 '타그물'이라는 단어로 '혜택'을 의미한다.  보통 '은혜'라고 하면 영적인 것을 생각하게 되지만, 이 '타그물'은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혜택들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보다 현실적인 것들을 망라한다.  내가 매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좀 더 생각해 보면 이 모든 혜택들은 잠시만 내가 사는 땅을 벗어나기만 해도 얻지 못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모든 것들의 기원을 주님으로 인정하며 그에 대해 보답하기 원하는데, 지금 내가 미국이라는 강대국에서 살면서 직장을 갖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누리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지만 이 모든 것들은 주님 주신 것이다.  그래서 '다시 드리기 (보답 '슈브'의 의미)' 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답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13절은 먼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시 17절에 반복되는데, 즉 구원은 여호와께 속했음을 인정하고 그 이름을 높이며 부르는 것으로, 이 '구원'과 '여호와'를 합하면 '여호수아' 즉 이제 헬라어로는 '예수'다.  구약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해 창 4:26부터 시작해서 창세기에 5번 나오다가, 출애굽기 26:25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기록한 이유 때문에 아마도 왕상까지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해 나오지 않다가 왕상 18:24에 등장하고 왕하 5:11 오늘 말씀 시 116:13, 그리고 드디어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라고 기록한다. 그러다가 몇번 더 언급되다가 신약에는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이 아아닌,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구절들이 등장한다.

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해 단지 시적 혹은 문학적 표현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한다면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을 부를 필요가 없겠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 이름을 부르는 실행으로 이어진다 (행 19:13, 22:16).  특히 행 9:14는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이라고 기록하며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제자들' 혹은 '그리스도인들' 혹은 '성도들'이라 부르는 것에 앞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이라고 칭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행 9:21도 동일).  바울 역시 롬 15:20에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기록하며 여러 지역에 있던 교회들에 대해 '교회' 혹은 '성도들'이라 부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라 칭했다.  즉 이렇게 주의 이름 혹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실행은 당시 매우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고전 1:2, 딤후 2:19).  그 이름은 구원을 주시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마 1:21, 행 2:21, 4:21, 롬 10:13).

하지만 이렇게 이름만 부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데, 단지 입술로만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서원'을 말하는데, '여호와께' 갚고 지키며, '모든 백성들 앞에서' 한다.  구원은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지만, 그 성취는 양방적인 관계를 통해서인데, 그래서 은혜와 혜택에 대해 주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고 높이는 것은 물론, 우리들 역시 우리의 서원을 갚는다.  문제는 과연 우리의 서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우리 자신들이 우리의 방법대로 우리의 기준을 통해 서약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 목적은 주님과의 관계에 있다.  서원 (네데르) 이라는 말은 명사형으로 60번, 그리고 동사형 (나다르)으로 31번 나오는 등 구약에서는 매우 중요한 단어인데, 창 28장 야곱으로 시작한다.  야곱은 그의 처한 힘든 상황 가운데 서원을 하는데, 그 전에는 서원했던 것을 찾을 수 없다.  상황이 힘들어지자 여호와를 부르며 주님께 서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서원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을 더 알고 더 가깝게 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안배다.

더 나아가면 나실인의 서원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서원이다.  야곱의 경우 어떤 비즈니스적 냄새가 풍기기도 하고, 구약에는 다분히 인본주의적인 서원의 모습도 등장하지만, 진정한 서원은 주의 구원과 우리의 성화를 위해, 즉 주님을 믿고 동행함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참된 구원이 된다.

주님, 너무도 풍족한 요즘 생활이지만, 자발적으로 그러나 동시에 주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주께 서원하며 그 서원한 것을 지키기 원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부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아버지 뜻대로 행하며 보내신자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소서.  모든 혜택을 인해 이 아침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