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 한 혼으로 분투함 (빌 1:22-30)
바울은 21절에 ‘내게 살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고 죽는 (것은) 유익하다’고 선포 했는데, 이제 22에는 ‘만일 그러나 살고 있는 (것이) 육신 안 이라면 이것이 나에게는 사역의 열매이고 내가 무엇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23절에는 특히 ‘그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라고 고백한다. 신앙 생활은 영적인 실재와 육적인 현실 사이에 끼어있지만 이 둘이 다른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미 자신에게 있어 그리스도께서 (주격) 살고 계시며, 죽는 것도 유익하다 라고 선포했지만, 그럼에도 현재 살고 있는 것이 육신을 벗어난 것이 아님을 부인할 수 없는데, 이것 조차 ‘사역의 열매’라고 한다. 사나 죽으나 그는 그리스도가 목적이고, 또한 삶 자체가 열매며 결과였다.
27절에는 1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명령어가 나오는데, 합당하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현재진행형 직설법으로 직적접인 명령이다. 이 ‘폴리투오마이’는 ‘시민의 삶을 살다’를 의미하는데, ‘시민이 되다’ 혹은 ‘시민을 삼다’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늘들의 왕국’ 즉 천국 백성임을 잊고 단지 이 땅에서 종교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 (빌 3:20)’ 음을 선언했던 것 처럼, 우리의 ‘합당한’ 생활은 바로 이 ‘왕국 생활’ 혹은 ‘하늘 왕국 시민’으로서의 생활이며, 바로 ‘위의 것을 찾 (골 3:1)’는 삶이다. 흥미로운 것은 직설법 명령형이지만 중간태/수동태로 이러한 삶이 우리의 의지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래서 27절은 그 비밀을 말해주는데, 이러한 삶은 ‘여러분이 한 영 안에 굳건히 서 있다는, (또한) 한 혼으로 복음의 믿음에 대해 분투하고 있다’고 하며, 합당하게 살 수 있는, 혹은 시민권자로 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한 영’과 ‘한 혼’에 관련 되었음을 말씀한다. 개역개정의 ‘한 마음’은 원어로 ‘한 영’인데, 동일한 말이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고전 6:17에도 나온다. 이것은 천국 시민으로서 우리의 정체성과 처해진 참된 상황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영적인 실체와 더불어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한뜻’ 역시 필요한데, 원어로는 ‘한 혼’이다. 각자 다른 인격을 가진 ‘혼들’ 즉 많은 사람들이 ‘한 혼’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복음의 신앙 (혹은 믿음)에 대해 분투하고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 혼’은 필수다. 각자 자신의 소견대로 편하게 믿겠다는 것은 ‘분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거나 애매한 것에 대해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사실 지난 5절 부터 ‘코이노니아’를 언급하며 말하고 있다. 이러한 코이노니아, 혹은 ‘천국 시민권자의 삶’은 영광스러운 믿음 뿐 만이 아니라, 29-30절은 ‘여러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그 안으로 믿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고난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안배되어 졌습니다. 같은 고난을 (여러분들은) 소유하고 있는데, (즉)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보고 이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듣고 있습니다’라고 기록한다. 바울의 사역은 개별적이거나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었고, ‘그 안으로 믿고 있는’ 것이며 또한 ‘고난 받고’ 있는 것으로 다른 믿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고, 또한 믿는 이들 역시 그와 동일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주님, 바울이 주님의 영 안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도 하고 싶었던 말이 오늘 우리 믿는 자들 가운데에서 실현되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 현재 삶이 왜 이런 상황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목적이 되심을 우리로 알게 하옵소서. 주님 안에서 겸손함으로 하나됨을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