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함으로 되어야 할 것들 (빌 2:12-18)

12절은 오해할만한 요소가 다소 존재한다. 먼저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로 번역된 부분은 원어로 '아가페이토이 무'인데, '아가페이토이'를 보통 영어로 beloved로 번역했기 때문에 한글로는 '사랑하는 자들'로 번역했다. 신약에서 61번 정도 나오며 이렇게 '복수, 호격'으로 된 것은 그리 많지는 않다. 문제는 '사랑하는' 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원어의 형태는 형용사로 '사랑스러운'이 더 맞다. 물론 바울도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 아가페의 원천은 아가페 자체이신 하나님이시지만 동사나 부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되어 있어서 성도로서 그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의미다 (사실 얼마나 성도들이 귀한가!).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처럼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동일한 '성도'로서 그들을 아름답게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항상 복종한 것 처럼' 부분인데, 여기 복종의 대상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바울을 복종했다는 의미는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드는데,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 (엡 5:21)'는 관계다. 따라서 여기 복종의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이시다.

또 다른 하나는 '나 있을 때' 라고 번역한 부분인데, '있다'라는 말이 동사처럼 들리지만, 원어는 '나의 임재 안에'로 되어 있고, 이 '임재'는 '빠루시아'로 주님의 재림이나 임재 등을 말할 때 쓰인 단어다. 마치 바울 자신이 주님의 임재를 대신하는 것 처럼 쓴 것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바울은 왜 이런 식으로 썼을까? 자신을 하나님 대신하는 권위자로 높이려 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대변하기도 한다. 바울은 이러한 입장에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있을 때 (임재 안)'나 '없을 때 (부재 안)' 등이 없이 항상 어디나 계신다.

중요한 점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게 되라'는 부분이다. '이루라'로 번역된 동사의 태는 중간태/수동태로 우리 자신이 우리들의 구원을 이룬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역시 구원하시는 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우리를 드려야 함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13절은 이 구원하시는 분을 분명히 밝히는데, '그의 기쁘신 뜻 위에 여러분 안에서 결단하고 일하도록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원어 참조)' 라고 한다. 원어로 보면 매우 분명한데, '떼오스 가르 에스틴 (하나님, 주어 - 때문이다 - 이시다)'로 되어 있다.

갑자기 14절은 '모든 것을 불평들이나 분쟁들 없이 하십시오'라고 부탁하는데, 앞서 2절에 '기쁨'을 말하고 또 13절 '기쁘신 뜻' 그리고 17, 18절에도 '기뻐하다'가 4번이나 나오는데, 신앙 생활에 기쁨은 필수지만, 이러한 불평들 혹은 분쟁들은 기쁨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현실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불평들이나 분쟁들 대신에 기도하며 권유하고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평이나 분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러한 구원을 이루게 하는 신앙 생활의 결과는 15-16절로 설명하는데, '그래서 여러분이 흠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뒤틀리고 타락한 세대 가운데 책망받을 것이 없게 (되어) 그들 가운데 세상 안 빛들로서 빛나게 됩니다.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있음으로 그리스도의 날 안에 내게 자랑이 되도록, 그래서 내가 헛되게 달음질하는 것도 아니고 헛되게 수고하지 않도록 (원어 참조)' 즉 '흠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됨' '뒤틀리고 타락한 세대 가운데 책망받을 것이 없게 (되어) 그들 가운데 세상 안 빛들로서 빛나게 됨'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있음으로 그리스도의 날 안에 사역자에게 자랑이 됨' 등이다. 여기서 동사는 '되다 기노마이'인데, 다른 동사로 보이는 단어들은 모두 형용사 혹은 동사구이다. 특히 이 동사의 무드는 '가정법'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났지만, 아직은 '흠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아직은 세상 안 빛들로서 빛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되어야' 한다.

주님, 기쁨이 넘치는 신앙 생활 되기 원합니다. 우리들 모두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 신앙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날마다 구원되어지는 삶 살기 원합니다. 이러한 비밀을 모르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이 마음을 열게 하소서. 오늘도 구원하소서. 주안에서 기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