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 (빌 4:8-13)
8절은 흥미로운데, 내용이 다소 애미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구절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냥 9절로 넘어갔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바울은 8절을 기록한다. 우리 말에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원어에는 '무엇에든지'와 함께 있는 단어 모두는 형용사면서 중성이지만 '무슨 덕'은 남성형 명사이며 '무슨 기림'으로 번역된 말은 여성 명사이고 단지 이 둘 앞에만 '만일' 혹은 '혹시'라는 'ei'가 붙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좋은 것에 대해서는 다 추구하며 지향하지만, 그 가운데 혹시 무슨 덕이나 기림이 있을지 생각하라는 의미같다. 앞에는 '무엇이든지' 라며 차별을 두지 않지만, 그들 가운데 혹시 덕을 이루고 기림 (원어상 '인정' 혹은 '칭찬')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 생각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다시 '관계' 안에서 가능하고, 이러한 것들이 사역의 목적임을 말한다.
이제까지 바울은 '기뻐하다'라는 동사를 능동태로 계속 써왔지만, 10절은 유일하게 수동태로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해집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뻐함은 상황에 관계없이 우리가 능동적으로 기뻐해야 하는 것이지만,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그러한 상황을 인해 이제 크게 기뻐해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11절은 물질적인 부족함이 빌립보 성도들에 의해 채움을 받았기 때문 만이 아니라고 한다. 바울도 그 사역을 위해서 또 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당연히 물질이 필요했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을 11절 이하 간증하고 있다.
11절을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면 '나는 내가 있는 그 안에서 만족해 하는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정도가 되는데, '배우다'는 아오리스트 시제로 보통 과거로 번역하지만, 과거는 완료형이 더 맞다. 즉 바울은 이러한 배움이 과거에도 있었고 아직도 배우며 앞으로도 배울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신앙인들의 삶은 물질적인 풍족함에 따라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 자체를 만족해 하는 것을 배우는 삶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발전'이 없을 것도 같다. 역사상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욕구에 따라 새로운 것을 개발해 왔기 때문인데, 하지만 뒤에 언급하듯 풍성하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그 안에서 만족하는 것에는 비결이 있고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12절의 '알다'는 완료형으로서 확실한 과거이며, 이 '앎'은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통해 알게 된 것이고, 따라서 머리로 아는 '기노스코'가 아니라 '눈으로 보아' 아는 '에이도 (혹은 오이다)'로 되어 있다. 이러한 앎을 소유하는 것은 바울과 같이 혹은 구약의 모세와 같이 어떤 다이나믹한 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주님을 만나기 전 바울은 꽤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12절은 '(나는) 또한 낮게 되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한 것 처럼 주님 만남을 통해 그는 낮아졌고 또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러한 낮아짐을 통해 '(나는) 또한 모든 것 안에 넘쳐남을 알았습니다' 라고 고백한다. 그의 낮아짐은 그가 한동안 추구하던 모든 것을 잃게 했지만 오히려 모든 것 안에 넘쳐나는 어떠함을 경험하게 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로 번역된 말은 '무에오'로 신약에 단 한번 나오는 말인데, 문자적 의미는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 교훈을 받다' 정도가 된다. '배우다, 훈련받다' 등을 뜻하지만 여기에는 무언가 세상의 것이 아니라 신비스러운 원리를 배운다는 면이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괜한 뚱딴지 같은 소리같고 덧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를 체험한 바울에 있어서 그것은 신비였다. 생각해 보면 일평생 잘먹고 잘사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결국에는 모두 죽게 된다는 것은 변치 않는 진리다. 따라서 삶의 목적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에 있지 않고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 근본 원인과 이를 해결하는 법을 알며 이에 대해 배우는 것에 있다. 이러한 배움은 수동적인 면으로 가능하며 따라서 주님께서는 우리로 영적인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육적인 고통을 체험하는 광야로 이끄신다.
결국 13절 말씀 처럼 '나를 능력있게 하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에 대해 나는 힘이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될 때 나의 도움과 나의 힘과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약한 내가 모든 것에 대해 힘이 있음을 고백하며 선포하는 것이 삶의 비밀이고 신비다.
주님, 많은 것들에 대해 단지 일상으로 치부하지 않게 하소서. 모든 것들에 대해 능력있게 하시는 주님 안에서 내가 힘이 있음을 선포하게 하소서. 섬기는 힘, 견뎌내는 힘, 믿음을 지키는 힘, 주님을 지향하는 힘을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