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자체가 제물되는 공동체 생활 (빌 4:14-23)
15-18절은 물질을 받고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말하지만 마치 물질을 원하는 것 처럼 들린다. 개역개정은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라고 번역했는데, '구하다'라는 말이 '달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원어는 '에피제이테오'로 '추구하다, 찾다'를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이나 성도들에게 선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21에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라고 고백했던 것 처럼 그의 삶에서 물질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성도들에게 '풍성한 열매'가 있기를 바랬다는 의미다.
성경에서 열매는 많은 것들을 포함하는데, 보통 단수로 되어 있고 역시 17절도 단수다. 영적인 열매를 주로 얘기하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 역시 의미할 때도 있는데, 흥미롭게도 18절은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마치 물질을 받아서 풍족해졌고, 그 받은 물질이 '제물'이라 말하는 것 같다. 이 '제물 (뚜시안)'이라는 말이 적어도 신약에서는 물질을 가리킨 경우는 전혀 없는 것 같은데, 과연 이 제물은 에바브로디도가 가져온 것들을 의미할까? 에바브로디도와 함께 (빠라) 보낸 '것 (정관사)'들은 복수로 되어 있지만 '향기로운 냄새 (곧)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제물'의 모든 단어는 단수로 되어 있다. 만일 물질들을 가리킨다면 '제물들 (복수)'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신약에는 단수도 있고 복수로 된 구절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된 제물은 우선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시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이 '제물'은 무엇을 가리킬까? 우선은 보내진 물질들을 가리키는 말이겠지만 이 문장에서 단수로 되어 있는 것을 찾아보면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이라서 혹시 그 사람을 가리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에바브로디도 편에'의 '편에'는 '빠라'라는 단어로 '~으로 부터 함께' 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나는 아버지로부터 왔다 (요 17:8)고 말씀하실 때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 떠나 오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함께 오셨다는 말씀인데, 여기서 에바브로디도는 물질을 가져왔지만 '함께 meta'가 아니라 'para'를 쓴 이유는 이 물질은 물론 그것을 가져온 에바브로디도 역시 매우 중요함을 암시하는 듯 하다. 그런데 문제는 '제물'은 여성명사지만 '에바브로디도'는 남성 명사라는 것인데, 그래서 이 제물이 물질들이나 혹은 에바브로디도 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제물'이 단수로 되어 있는 말씀을 찾아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이 힘을 합해 보내온 물질이나 에바브로디도는 물론이지만, 이 모든 것 안에 통틀어 빌립보 성도 자신들의 삶을 드리는 그 드림이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신 이유는 그 드린 제물 자체의 차이가 우선이지만 그 삶의 모습 역시 관계가 있다. 그래서 '가인과 그의 제물 (창 4:5)'라고 기록했는데, 가인은 먹고 살 것만을 추구했던 반면, 아벨은 당시 먹을 수도 없는 양을 치는 삶을 살았다. 롬 12:1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명하는데 우리 몸을 태워 바치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삶 자체가 예배가 되게 하라는 의미다. 단지 물질을 보낸 것이나 보낸 사람 혹은 그 물질 자체가 향기로운 제물이 아니라 그렇게 보내기 위해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과 함께 겪어야 했던 환난 및 그 삶 자체가 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님, 공동체를 위해 또 공동체를 통해 온전한 제물이 바쳐지는 참된 교회생활이 있기 원합니다. 주님의 필요를 알게 하시고 하나되어 섬길 수 있는 참된 공동체를 세우소서. 모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삶이 예배가 되는 제자들과 성도들로 성장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