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제: 마음과 생각의 죄사함을 위함 (레 5:1-13)
우선 '속죄제'라고 개역에서 번역한 말은 원어 '카타아ㅎ'로 '죄, 죄악된 것'을 의미하며 창세기 부터 시작해서 레위기에는 4:3부터 26:28까지 계속 나오는데, '속죄제' 즉 '제물'보다는 '죄'를 의미하기 때문이고, 여기에 '헌물' 혹은 '제물'이 함께 쓰일 때 (혹은 없어도 문장상 이해가 될 때) '속죄제'로 이해하게 된다. 그에 비해 '속건제 (아샴, 악행 혹은 범죄)'는 개역개정에서는 레 5:15에 나오지만, 원어는 6절에 이미 등장하며 19:22까지 기록된다. 그래서 한글킹제임스역은 6절에 '주께 범법 헌물을 가져오되' 라고 번역했는데, '범법'이 바로 '속건제'에 해당한다. 이 둘은 서로 연관이 있는데, 마음에 쌓은 죄악된 생각이 우리의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절은 '보거나 듣거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증인되지 않을 경우, 그리고 2-3절은 동물에게서든 사람에게서든 부정한 것을 접했을 경우, 그리고 4절은 입술의 죄 특히 맹세한 것이 생각났을 때 등 이러한 모든 것은 '앎'과 '깨달음'에 관계된 것이고, 이에 대해 사하는 것이 속죄제이며, '죄'는 행함 이전에 '마음과 생각'의 문제임을 말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우선은 자백이 필요한 것이다 (5절).
죄에 대한 결과는 죽음이기에 다른 생명이 나를 대신해서 죽어야 하며 이것이 죄를 위한 제물이지만 (6절) 이 '속죄제 (죄를 속하는 제물)'의 경우 1장 처럼 죄의 근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나 생각의 문제임을 언급하며, 따라서 이에 대해 자백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래서 피흘림이 없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도 가능하다.
개역개정이나 여러 한글 번역본은 6절 '제사장은 ... 속죄할지니라'고 번역했는데, '속죄하다'의 원어는 '카빠르 kaphar cover, 거풀'로 '덮다'를 의미한다. 즉 죄 자체를 깨끗하게 없이하는 권세가 제사장에 있는 것은 아니라 본다. 우리는 서로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야 하지만 근본적인 죄는 오직 하나님만 용서하실 수 있는데, 그래서 영어본에서는 forgive라고 하지 않고 atonement라는 말을 썼다. 이 atonement라는 말은 다른 두 당사자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해 준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제사장이 하는 일이다. 주님 외에는, 하나님 외에는 우리의 죄를 사하실 능력이 없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죄를 용납하고 덮어줄 뿐이다.
과거에는 구약 경륜에 따라 개별적으로 직접 하나님께 죄를 위한 제물을 드릴 수 없었고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서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신약 경륜에 따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각자가 주 앞에 자백하며 언제라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위 1-4절 열거된 죄들에 대해 제물은 자기 형편이나 능력대로 바칠 수 있는데 (7, 11절), 제물 보다는 자백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위의 열거된 죄들은 살인이나 간음 거짓말 도둑질 등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범죄가 아니라 매우 영적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죄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 즉 다시 말해 우리의 생각에 관련된 것들이다. 우리는 먼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정결하며 또한 자유해야 한다.
주님,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향하고 고정시키면 평안임을 고백합니다. 주 앞에 항상 우리의 어떠함을 자백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시고 지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