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건제: 허물을 속하기 위한 제사 (레 5:14-6:7)
'속죄제'가 '죄' 특히 마음과 생각에서 비롯되는 죄를 덮기 위한 제사라고 한다면 이제 속건제는 실재적으로 나타난 죄 혹은 허물을 덮기 위한 제사이다. 한자 '건'은 '허물'을 의미하는데, 히브리어 '아샴'은 악행 혹은 범죄를 의미하며 영어로는 trespass 즉 무언가 정한 것에서 벗어나다 혹은 범하다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범법'을 말한다.
15절부터 그 내용이 열거되는데, 개역개정은 '여호와의 성물'이라고 번역해서 성전에서 쓰이는 성물만을 연상하게 하지만, 원어는 '코데쉬'로 '거룩함'을 의미하며 복수로 되어 있다. 이 단어 자체는 구약에 464번 등장하지만 특히 레위기에는 바쳐진 제물이나 전병 등은 물론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이 받는 십일조 역시 가리킨다. 따라서 그 배상은 '제사장에게 (16절)' 하는데, 원래 제사장에게 가야할 몫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사장을 위해 먼저 규율을 정해 놓은 것은 과거 구약의 경륜은 성막 혹은 성전 중심이었고 제사장들에 의해 운영되었기 때문인데,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은 원래대로 한다면 다른 지파들의 십일조를 더하여 열한 지파 보다는 몫을 조금 더 받게 된다. 속건제를 위한 제물 외에도 이렇게 '거룩한 것들'의 가치와 더불어 오분의 일을 더해서 제사장에게 주는데, 죄를 범한 이들에게는 깨우침이 되고 제사장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원래 가치의 20%이니 그리 과하지 않은 벌금이다.
17절은 동일한 속건제지만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범했을 때에 대한 것인데 '부지중에 범'했어도 허물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발뺌할 수 없다는 것이며, 마치 현대에 법을 알지 못해도 법을 어겼을 때 티켓을 받는 것 처럼 이에 대해 '숫양'을 제물로 바친다. 이러한 것은 주의 명령을 배우며 마음에 새기게 한다.
6장 2절부터는 사람들 사이에 특히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착취하는 문제에 대해 말씀하는데, 이렇게 물질에 대해 죄를 짓는 원인이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함이라 기록한다. 여호와께 신실하면 적어도 양심으로도 물질에 대해 신실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눅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며 물질에 대해 신실할 것을 명하셨다.
이러한 물질에 대한 범죄에 관해서도 원래 물건을 돌려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 가치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내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원주인에 대한 사죄이며 보상이다. 소위 '다만 주 앞에 범죄했다'고 사람에 대한 사과를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여기에 사람 사이에 죄를 범했어도 그 원인은 앞서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죄는 항상 하나님의 계명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속건제물 역시 바친다.
주님, 죄의 근본 원인은 주님을 떠나기 때문임을 압니다. 주 안에 있게 하소서. 실수하더라도 벌금을 조금 물더라도 배우며 익히며 변화되고 성숙하는 우리들 되게 하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범한 죄와 허물들을 발뺌하지 말고 자복하며 갚을 수 있는 우리들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