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친구가 되신 그리스도 (레 7:11-27)

소위 '화목제'에 관한 기록이다. 개역역은 '화목제'라고 해서 서로 화목을 도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전에는 원수였다가 이제 화목하게 된 것으로 여기는데, 지난 3장에 이미 나왔듯이 원어로는 셸렘이고 그 어원은 샬람 즉 평화 '샬롬'과 어원이 같다. 이 '샬람'은 '온전하다, 끝내다, 깨끗하다' 등을 의미하여 출애굽기 같은 경우에는 많은 때 '값을 (온전히) 지불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즉 앞서 많은 종류의 제사가 있었지만, 이 화목제는 이제 온전히 값이 지불됨으로 서로 간에 빚진 것이 해결되고 친구로 지내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동번역에는 '친교제물'로 번역했다. 요한 1서 1장에는 '사귐'이라는 말이 3,6,7절에 걸쳐 세번 나오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또한 우리 가운데 사귐이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화목제물은 감사와 함께 갈 때가 많은데 제물과 함께 무교병은 물론 유교병도 함께 드린다. 무교병은 킹제임스흠정역에 '그 납작한 빵'이라고도 나오며 누룩이 없기 때문에 납작하게 구워진다. 그에 비해 유교병은 부풀어 올라서 커지는데, 바로 감사의 모습이다. 자기 자신 혹은 자아를 부풀리는 것은 죄이며 또한 외식으로서, 그러한 누룩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지만 감사를 드릴 때 우리 마음은 부풀어 오르는데, 우리의 감정도 커지며 감사가 넘친다. 하나님을 magnify 한다.  아마도 이것이 유교병을 드리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감사를 위해 드리는 화목제 혹은 화평제물 혹은 친교제물은 그 날에 유한한데, 주님과의 친교는 따라서 매일 새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화목제에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화목제가 그 말 그대로 제사의 완성임을 말한다. 화목은 나눔이고 친교이며 하나됨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앞서 감사도 있지만 서원 혹은 자원도 있는데, 이것은 사역을 말한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등을 모두 드린 후에 화목제를 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 그리고 일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분과의 참된 교제, 즉 그 분 안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는데 (롬 3:25), 그에 따라 우리는 '사귐이 있고' 이 사귐 즉 코이노니아는 우리 만이 아닌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법적 주인이고 창조주시지만 이제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요 15:15)'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이 화목 혹은 친목의 신비를 더 보며 더 누리기 원합니다. 온전히 주님을 누릴 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비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졌음을 알고 또한 감사합니다. 이제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며 찬양하고 더욱 감사하는 자들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