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해야 하는 이유 (레 11:1-28)
부정한 생물과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부정하다' 라는 말을 넘어 12절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니라' 그리고 20절과 23절 역시 '혐오 (샤까쯔)'라는 말이 기록된다.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위 '호불호' 즉 일반적인 '선호'를 의미하지만, '혐오'는 매우 강한 단어로 자신의 의지를 사용할 것을 명하는 말이다. 사실 원어로는 동사가 아니라 '혐오' 혹은 '가증' (이 될 것이다) 즉 명사로 되어 있는데, 지난 7장 21절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무슨 물건을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기록된 것 중에 '가증한' 으로도 번역되어, 이제 11장에는 '가증'으로 번역된 단어까지 포함해서 10, 11, 12, 13, 20, 23, 41, 42절에 계속 언급된다.
사람들은 '평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사실상 참된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차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어떤 것을 더 선호하며 혹은 어떤 것은 싫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물들을 보시며 좋으셨다고 창세기 1장은 분명 기록하지만, 당신께서 창조하신 만물들 중에 차별을 넘어 이제 아예 '혐오'할 것을 명하신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우리가 보통 '모두를 사랑하라'는 말을 좋아하고, 그것이 마치 기독교의 최고 가치인 것으로 오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작 '모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분별없는 사랑은 치명적인 독이 되기 때문인데, 특히 사랑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가페'는 매우 특별한 단어로 단순히 감정적 혹은 감성적 사랑이 아니다. 거기에는 고난을 수반함으로 후에는 친밀한 교제를 이루는 것을 내포하는데, 따라서 거룩함과 속됨 혹은 가증함은 함께 교제를 나눌 수 없다.
사람의 타락으로 땅은 저주를 받았고, 더 이상 처음 창조 때 처럼 만물이 과거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게 되어 버렸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것 같이, 아담의 죄로 땅이 저주를 받아 만유가 영향을 받았고 수 많은 생물들이 그 원래 창조 목적과 기능 그리고 그 원래 모습에서 벗어나서 육식 동물들이 생겨나고, 모기는 피를 빨기 시작했으며 그 외 여러 해충과 독충들이며 위험하고 해로운 생물들로 변하여 인간을 위협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며 생각해 볼 문제는 레위기의 이러한 명령은 '먹는 것'에 대한 규례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특히 먹기 위해서는 생물들이 죽어야 하며, 따라서 그들의 '주검'을 다루는 것을 언급한다는 점이다. 다시 창세기 선악과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선악과를 '먹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아도 되고 만져도 되지만, 먹는 것 만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부정한 생물들에 대해 볼 수도 있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만질 수도 있었겠지만, '먹기' 위해 죽이면, 그 주검을 만질 수도, 또 그것들을 먹을 수도 없었다. 이는 무언가를 먹으면 그것이 나와 하나가 되기 때문인데, 선악과 역시 단지 하나님의 명을 어겼다는 단순한 설명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물론 명령을 어긴 것 자체가 죄이고 매우 불순한 것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명령이 먹는 것과 연관 되었던 것이고, 먹은 후 처음 발견한 것은 자신들이 벌거 벗었다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원래부터 벌거 벗었지만 눈이 가리워져 벗은 것을 볼 수 없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면으로는 그들의 몸에 뭔가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는 생각이다. 선악과는 그들에게 '들어가' '선과악'에 대한 '지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DNA를 파괴하고 변형시켰다.
주님께서는 과연 '모두 (혹은 모든 것)'를 사랑하실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자기 목숨까지 미워'할 것을 (눅 14:26, 요 12:25), 또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다고 (히 1:9), '또 다른 이들은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육신으로 얼룩진 옷까지도 미워함으로. (유 1:23, 원어 참조)'는 말씀이 있고, 더우기 구약의 하나님도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롬 9:13)'고 말씀하신다. 특히 계 2:6에는 주님께서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고 말씀하시는데, 소위 '사랑의 하나님' 혹은 은혜의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을 '혐오'하기까지 미워해야 한다. 하지만 '육신으로 얼룩진 옷'은 미워하되, '사람'에 대해서는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겨야 (유 1:23) 하는데, 우리 역시 과거 죄인들이었고, 넘어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정한 것들을 혐오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에 대해 구별하기 위함이고 구별은 거룩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을 지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여야 한다 (약 1:27).
주님, 사는 것 자체가 녹록하지 않지만 이에 대해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은 더욱 힘든 것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을 보고 만지고 그 안에서 살지만, 그에 속하지 않고 우리 자신에 대해 분별함으로 성도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오늘도 인도하소서. 주의 말씀을 먹음으로 그 거룩하심을 닮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