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반대는 거룩임 (레 11:29-47)

성경에서 말하는 정부정에 대해 위생학적인 개념으로 이해 혹은 해석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완전히 틀리지는 않겠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그러한 점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32절은 '물에 담그라'고 하지만, 어떤 균이나 미생물에 대한 소독은 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정의 원리 중 하나는 작은 것이 큰 것에 닿을 때 큰 것이 이기지 못하고 부정하게 된다는 것인데, 정한 것은 부정한 것에 닿으면 부정하게 되지만, 부정한 것에 정한 것을 섞는다 해도 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다 더 많고 큰 것 즉 음식이나 그릇 혹은 화덕이나 화로까지 깨뜨리라고 명한다 (32-35절). 부정함 즉 죄의 세력, 그 힘, 혹은 그 번지거나 퍼지는 파급이 얼마나 큰지 말하고 있다. 성도나 교회는 정결함을 지켜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세상의 것을 들여 놓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누룩이고 죄의 파급력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돌이키려 해도 너무도 죄의 모습에 익숙해지게 되어 돌이키기 쉽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샘물이나 물이 고인 웅덩이 (36절)' 즉 물이 계속 흐르거나 물의 양이 많은 곳에 이러한 부정한 것이 닿을 때는 그러한 물들은 부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오늘 생명의 삶 찬송이 '정결하게 하는 샘이'다. 구약에서 부정함을 씻을 때 물로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것은 영적 원리를 보여주며 ,이 '물'은 말씀을 의미한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해서 2-3절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라고 하며 율법 즉 말씀이 시내로 비유했다. 요 17:17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특히 엡 5:26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기록하며 바로 말씀과 물이 하나임을 말한다. 요일 5:6은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고 또 요일 5:8은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증언한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듣고 볼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마치 물로 씻겨지는 경험을 한다.

중요한 점은 부정함에서 씻기고 시간이 지나 깨끗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정을 경계하는 것은 바리새인들 처럼 위생상으로만 깨끗하기 위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거룩을 위함이다. 과거 구약에서는 많은 경우 '기름 혹은 관유로 거룩하게' 하는데, 그 외에도 주님 말씀 처럼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 (마 23:19)' 즉 제단도 그 예물이나 제물을 거룩하게 하지만, 결국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출 29:44, 31:13, 레위기 여러 곳). 그래서 44절은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또 45절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고 말씀한다.

주님, 위생적으로만 깨끗하려 하고 그 마음 속은 부정함으로 가득했던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오늘도 제 자신의 실존을 씻기시고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마음을 씻어 주소서. 주의 말씀은 능력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