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과 보호를 위한 차별 (레 12장)
평등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공평에는 차별을 두는데, 그 기준과 가치관이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 말씀은 마치 여성을 차별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지만, 4절은 '성물을 만지지도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을 기록하며 여성도 보통 때에는 성물을 만질 수도 또 성소에 들어갈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요즘 소위 '양성평등'을 지나 이제 아예 '성평등'이라는 말로 별의별 유형의 성별이 자신이 주장만하면 결정할 수 있다는 막가파가 되어가고 있는데, 분명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창조질서도 어지럽히려는 원수의 궤계다. 성경에는 많은 경우 여성을 차별하는 듯 들리는 구절들이 존재하지만, 과거 구약에도 여선지자가 있던 것은 물론, 신약 시대에도 여선지자 및 여집사가 존재한다. 딤전 3장은 장로나 집사가 '한 아내의 남편 (딤전 3: 2절, 12절)' 즉 남자임을 밝히는데,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여자는 집에서 가정을 섬기며 남편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개역개정 롬 16:1에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 라는 부분에서 '일꾼'은 '집사'의 여성형 명사다. 즉 '여집사'라는 의미이다. 특히 바울의 사역을 힘써 도운 것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는데, 한번을 제외하고는 브리스길라 즉 대부분 여자를 먼저 기록했던 것을 보면 그녀가 매우 신실히 사역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아를 낳으면 7일 동안, 그리고 여아를 낳으면 14일 동안 '부정'하며, 각각 30일 혹은 60일 후에 산혈이 깨끗해질 것을 기록하는데, 이러한 언급은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더럽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그만큼 보호해 줘야 함을 말한다. 우리 문화로 하면 소위 '산후조리'겠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를 낳는 것은 축복된 일인데, 6-8절은 '속죄제'를 드릴 것을 명한다는 점이다. 묵상해 보면 아이를 낳는 것은 매우 신비롭고 복되며 축하받을 일이지만, 창세기 3:16 기록에 의하면 여자가 먼저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을 말씀한다. 여자의 정체성과 기능과 복은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지만, 그럴 때 마다 과거 죄를 기억나게 된다. 그래서 속죄제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산모가 아이를 낳다 목숨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건강하게 아이를 낳은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주님, 여자가 남자와 하나되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정말이지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임을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와 합하심으로 교회가 세상에서 생명을 나타내고 또 누리며 새로운 열매로 계속해서 주님의 제자들을 더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의 성령께서 구원하시고 역사하시며 우리 안에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