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물에서의 나병 재발, 날마다 개혁됨 (레 13:47-59)

지난 번에는 사람에게 발생한 나병이나 피부병에 대한 진찰과 그 해결이었다면 이제는 천이나 옷 가죽 등 무기물 특히 사람 몸에 닿는 것들에 발생하는 곰팡이나 오염 등에 대한 진단법과 해결법을 기록한다. 사람이 병 들어 옷이나 사용하는 물건들에 병이 옮을 수도 있고, 반대로 오염된 옷이나 물건 등에 의해 사람이 병들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 공동체를 오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 진단과 해결은 필수다.

사람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질병이나 병균에 대해 하나님 주신 면역력이나 자아 치유력이 발동하지만, 무기물 특히 옷 같은 경우는 생명력이 없기에 오염이 되면 세탁을 하거나 합당한 처리를 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오염이 번지지 않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 불로 태워야 함을 말씀하는데, 빨아서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는 지속되어 왔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함을 롬 13:14과 갈 3:27에 기록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경우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의식들과 행위들을 그리스도로 착각하며 이러한 것을 자신의 옷으로 삼는다. 생명이신 그리스도와는 달리 이러한 종교적 모습이나 색채는 영적 나병에 취약한데, 오염이 되면 겉잡을 수 없이 번지고 그렇지 않더라도 후에는 재발되기 때문이다.  마치 오염된 옷에 대해 빨아서 색점이 없어지지 않으면 다시 쓰지 못하고 모두 불태워 버려야 하는 것 처럼, 종교가 이와 같다. 오직 색점이 완전히 사라질 때만 다시 빨아서 정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그 옷은 살아서 우리를 감싸고 덮어 주지만, 종교가 우리의 옷이 될 때는 마치 창세기 무화과 잎으로 만든 가리개 같아서 아무리 기독교라 할지라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물론 다른 종교는 말할 것도 없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그 생명의 능력으로 오염된 것을 정하게 하시지만,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 나와서 합당하게 처리함을 받지 않으면 그러한 정결케 함은 불가능하다.

개혁교회 혹은 개혁신학은 매우 훌륭하지만 혹시라도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를 대체한다면 버려야 하는 오염된 의복과 다르지 않다. 개혁은 이미 500년 전에 이루어졌는데 옛것만을 고수하는 것이 참된 개혁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개혁이 필요했지만 오늘날 과연 진리에 입각해서 생명인 그리스도로 개혁하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이 과연 세탁되고 있는지, 세탁되어 다시 쓸만한지 돌아봐야 한다.

주님, 명목상 교회들이 많은 이 때에 주님의 제자들이 모여 다른 이들을 제자 삼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많이 일어나기를 구합니다. 낡아지고 좀 먹는 의복 같은 종교로 부터 나와서 그리스도 안으로 더욱 들어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