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주의도 아니고 쾌락주의도 아님 (레 15:1-18)

'유출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주브'로 '흐르다'는 의미이며 '병'이라는 말은 없다. '새번역 성경'과 '우리말성경'은 '고름'으로 번역해서 마치 어떤 병에 걸린 결과로 생각하게 하지만, 그렇다기 보다는 몸에서 무언가 나오거나 분출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생명의 삶 해설처럼 성에 관계된 것이고, 특히 16-18절의 '설정' '정수' 등은 이러한 것을 뒷받침 한다. 한글번역본들은 3절에 번역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루르'라는 말로 성경에 여기 단 한번 나오며 그 어원은 '리르'인데 무언가 '하얗고 걸죽한 것이 흐르는 것'을 의미하며 구약에 단 2번 나온다. 이러한 단어는 분명 정액을 묘사하는데, 이하 모든 구절들이 성관계와 그에 따른 유출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처럼 들린다. 특히 (아마도 정상적인) 성관계 후에도 부정하다고 하는데, 생명을 낳게 하고 부부간의 성적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자아내게 할 수도 있는 구절이다. 그래서 성에 대해 터부시 하게 되고 언급을 꺼리게 하지만 이것은 과거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제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계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령과 규례를 주신 의미를 한번 돌아봐야 하는데, 사실상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에 하나가 성적 쾌락일 수 있다. 그래서 고대 대부분의 신들은 번영과 풍요를 상징하며 이는 그대로 성적 쾌락이나 타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한 신들을 따를 때 인간의 삶의 목적은 쾌락 추구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 쾌락 자체 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앙망하고 그에게 항상 돌이키는 것이 요구되는데,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쾌락 보다는 하나님을 누리는 (영어로 enjoy) 것이 인간의 창조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할 것은 쾌락이 아니라 성령 안의 희락이며, 부부간의 성적 쾌락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을 채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부부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고전 7:5)' 즉 주님과의 영적 누림이 더 중요함을 말한다.

기독교는 금욕주의를 표방하는 종교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쾌락을 추구하는 종교 또한 아니다. 즐겁고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소위 잘먹고 잘살며 그러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와 전혀 상관없는 일임인 동시에 극단의 절제를 요구하는 것도 바른 것은 아니다. 욥은 그의 아들들이 생일을 맞아 잔치를 베풀 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잔치 후에는 항상 그들을 불러 성결하게 하고 그들을 위해 번제를 드렸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가장 깊은 만족과 기쁨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누리기 때문이다.

주님, 주 안에서 기뻐하기 원합니다. 소유가 부족하고 내 맘대로 안된다 해도 주님만으로 만족하기를 배우기 원합니다. 주를 소유하기 원하고 나 또한 주의 소유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