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더 나은 제물 되심 (레 16:11-22)

오늘 본문은 10절까지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다. 11절은 히 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는 말씀 처럼 아론이 먼저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속죄해야 함을 말씀한다. 그 후에 비로소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렸다 (15절).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나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지성소를 위해서도 속죄해야 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가 원인이었고, 그 회막은 '그들의 부정한 중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16절). 지성소 혹은 성소는 말 그대로 거룩한 곳인데, 그것들에 대해서 조차 속죄 (atonement) 의식을 행해야 했고 또한 지성소 만이 아니라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는 것이 필요했다 (20절). 이것은 좀 어불성설 같은데, 어떻게 부정한 것을 거룩하게 하는 주체들에 대한 속죄가 필요했을까? 그리고 그러한 것은 동물의 죽음과 그 피를 가지고 행했다 (18절). 그렇다면 동물의 피가 지성소보다 더 거룩하고 힘이 있다는 말일까?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러한 것이 실재로는 효능이 없다고 기록한다 (히 10:1,2,4). 또한 이 모든 것은 하늘의 것의 그림자 혹은 복사품이었다고 단언한다 (히 8:5, 10:1). 이러한 그림자의 실체 그리고 하늘의 온전한 것은 그리스도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라고 히브리서 9:24은 명시한다.

21절은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라고 기록하는데, '우리말 성경'은 중간에 '...그것들을 염소의 머리에 얹는 상징적인 의식을 치러야 한다' 라는 성경에 있지도 않은 부분을 삽입했다. 그래서 개정개역이 원어를 더 잘 직역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설명은 과거 구약의 제사가 모두 참 효능은 없는, 다만 상징이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22절은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고 했는데, '접근하기 어려운'이라고 번역된 원어 '게제라'는 '분리'를 의미하며 '나누다' 혹은 '자르다'의 의미인 '가자르'가 어원이다. 이 아사셀 염소는 백성들의 모든 불의를 지는 것으로 여겨져서, 정해 둔 사람에게 이끌림 받아 어느덧 땅의 경계를 지나는 접경에 이르면 놓아 주는데, 이로써 백성들은 그들의 죄들로 부터 분리됨을 상징한다. 이러한 것은 상징이지 정말 그 효능은 없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제까지 아사셀에 관한 모든 기록은 '아론'에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론이라는 이름 안에 그 후 모든 제사장들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지만, 성경 기록상 이 아사셀은 후에는 찾을 수 없다.  더우기 민 33:38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라고 기록하기 때문에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죽었다.

주님, 과거 상징들이 이제는 주 안에서 현실 혹은 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누리기 원합니다. 진리를 앎으로 자유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