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안식에서 기쁨의 안식으로 (레 16:23-34)
우선 개역개정이 잘못 번역한 것은 31절 '안식일 중의 안식일'이라는 부분이다. 이렇게 번역하자면 영어로 '안식일들 중(복수)' 으로 되어 있어야 하는데, 원어는 둘 다 모두 단수이다. 그래서 '안식을 (지키는) 안식' 정도가 된다. 하지만 안식을 두 번이나 쓴 것은 개역개정 번역 처럼 강조의 의미도 있겠다.
우리말 '안식'에는 '쉰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히브리 원어 '샤바뜨'는 '멈춤, 쉼, 가만히 있음' 등의 의미이고 따라서 성경적 안식은 '완성'과 관계가 있다. 창조의 완성 후 하나님께서 안식하셨고, 특히 오늘 말씀은 죄 사함에 관해, 그리고 주님께서도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실 때 그 구속 사역의 완성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주님의 구속 사역은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누구도 다시 세상 죄를 위해 죽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안식(일)은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31절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라는 말씀 처럼 또 다른 측면이 있다.
히브리서에는 이 안식에 대해 세 가지로 언급하는데, 과거 구약에서 말씀하신 안식(일)과 그에 대해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 (히 3:11, 18), 그에 비해 우리에게 약속된 안식과 현재 우리가 누리는 안식 (4:3, 4:10), 그리고 앞으로 온전히 들어갈 안식에 (4:11) 대해 설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말이 안식이지 원어 그대로를 번역해서 '멈춤' 혹은 '스톱'이라고 하면 무언가 자유롭지 않은 것이 느껴진다. 마치 운전하면서 빨간 불 앞에 멈춰 서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과거 이스라엘은 이를 율법적으로 지켰는데, 그 본 의미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과 죄사하심 등에 대해 인정하는 것임을 잊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분투하는 것은 이미 이루신 구속 곧 죄사함이 아니라 이 구속하심을 지키고 매사에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요구되는데, 그래서 '혼을 괴롭게 하는 (킹제임스 흠정역)' 것이 필요하다. 안식은 쉬는 것이 아니다. 몸이 쉬더라도 마음과 생각이 번잡하고 불안하면 참된 안식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 정말이지 내외부적으로 모든 것을 멈추고 주님만을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주님, 많은 사역들이 있지만, 정말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사역인지 돌아보게 하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참된 안식이며, 천국은 바로 주님 당신이심을 압니다. 이러한 하늘들의 왕국이 우리 안에 온전히 임하며 바로 이 안식에 들어가기 힘쓰기 원합니다. 허공을 치는 우리의 헛된 분투함에 대해 멈춤을 선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