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학 (시 119:73-88)

요드와 카프 부분이다. 이 '요드'는 거꾸로 된 콤마 혹은 쉼표 같이 생겨서 주님께서 마 5:18에서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신 바로 '일점'에 해당한다. 이 알파벳은 단지 한 획으로 이루어진 작은 것이지만 이것이 삭제 되거나 바뀌면 말이 되지 않고, 특별히 히브리어는 알파벳마다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단어 혹은 문장마다 총 숫자가 계산되는데, 그 또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특히 이 '요드'는 창세기 1장 1절 부터 세번 나오는데 (바레싯, 엘로힘, 하삼마임), 오늘 같은 경우는 혼자 있지 않고 다른 모음과 함께 있어서 '야' 혹은 '여' 등으로 발음된다.

73절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에서 '만들다'는 완료형이지만 '세우다'는 미완료형이고 영어로는 fashion으로 번역했는데, 나는 이미 만들어졌고 그것은 영광스럽게도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졌어도 이제 '세우는' 혹은 '형성'이 필요한데, 그 역시 현재 내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다. 주의 백성은 이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다.

75절은 그의 삶을 간증하는데, 원어로는 '야다 (직접 혹은 주관적인 알다)'로 시작한다. 주님에 대해 마치 부부생활을 통해 깊이 아는 것 처럼 친밀하게 안다는 것인데,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 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고난을 받으면 큰 의미없지만 나의 삶 가운데 괴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은 단지 스트레스 받거나 재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성실하심 혹은 신실하심 때문임을 말한다.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이 복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제까지 율례, 규율, 토라 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고 계속 말해왔는데, 이번에도 역시 같은 말을 한다. 시편 119편의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만일 다윗이라면 그는 그가 지은 다른 시편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읊조리는 것이 생활화된 사람이다. 과거 조선 시대에 유교의 한 학파 소위 '신유학 Neo Confucianism '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선비들과 학자들, 그리고 신하들은 물론 제왕들까지 매일 배우며 경연을 했었는데, 다윗 역시 하나님의 토라를 사랑하며 매 순간 읊조리며 그의 길을 가려 했음을 볼 수 있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 하는 것은 과연 왕같은 제사장 혹은 왕족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고, 이러한 것은 비단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도 전수해야 하는 것이다. 제왕학은 단지 왕으로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목적이 아닌, 왕으로서 참된 인간됨을 배우는 학문이다.

87절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라는 구절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때를 연상하게 한다. 다시 말해 이 119편이 다윗이 쓴 것이라면, (아니 다윗이 썼건 아니건 간에, 그의 다른 시편들을 보면) 그에게 왕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격 없는 집안 출신으로서 은혜로 왕으로 세워진 것에 감사했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의 왕권을 영원히 세우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면 왕권에 대해 욕심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에게는 오직 주의 말씀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주님, 왕위나 왕권 보다는 왕에 합당한 삶을 살며 왕의 위엄을 잃지 않고 왕으로서 서게 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저를 세우시며 온전케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일어나심 같이 저도 일어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