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와 명철 (시 119:89-104)

89-96은 라메드 즉 영어로하면 L이고 97-104는 멤 즉 영어로는 M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라고 시작하는데, 이 '말씀 (다바르)'은 단수로 헬라어 '로고스'와 연결된다. 만물은 이 '로고스'이신 주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에게네토) 요 1:3은 증거하는데, 89절은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자리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이 말씀은 육신이 되는 (에게네토) 사건이 발생하는데, 말씀은 실체이지만 형체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데, 거기에서 모든 것이 나올 수 있고 또한 나왔다. 이러한 말씀은 거룩한 분이기에 하늘에 자리를 잡으신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하늘과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90절은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라고 기록하는데, '세우다 (쿤)'은 '굳게 하다'라는 뜻으로 사실 지구 자체는 매우 불안한 구조임을 언뜻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그 누구도 지구 내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데, 속이 맨틀이나 그 외 금속 물질로 가득찼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속이 텅 비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사실 지구 표면과 바닷물이 차지하는 구간은 매우 얇아서 그 밑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이 정도로 지구가 견고하려면 속이 꽉차 있어야 하겠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말씀이 증거하는대로 주님께서는 땅을 굳건히 하셨다.

이러한 진리 특히 토라에 기록된 여러 구절들을 배우며 묵상함으로 깨닫게 되는 것들은 '나의 즐거움이 되'기 때문에 '내 고난 중에 멸망하'지 않는다 (92절). 세상 지식이나 완전하게 보이는 것들은 다 끝이 있지만 주의 계명 (원어 단수) 즉 말씀은 그 한계가 없다. 우주 만물이 다 그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97절부터 '멤'으로 시작하는데, 토라와 계명을 사랑함으로 하루 종일 묵상한다고 고백한다. 흥미로운 것은 '명철'이라는 말이 이 두 구간에 세번 나오는데, 99절은 '사칼'로 '지혜롭다 prudent'라는 의미고 100절과 104절의 '명철 (빈)'은 '분별하다 discern'를 의미한다. 이 두 단어 모두 좋은 것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사칼'이라는 단어가 창세기 3:6절 선악과를 묘사할 때 처음 사용되었는데, '빈'은 창세기 41장이 되어야 처음 나오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이라는 말에 이미 선악간에 분별함을 뜻하기 때문에 이 역시 선악과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히 5:14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고도 기록한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사람에게는 지혜와 명철이 필요하지만, 성공하는 것이나 혹은 처세술이 그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며,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것을 성경은 지혜라 하지 않는다. 성경적 영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 분께 더욱 배우며, 나의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고 분별이며 기독교적 영성이다.

주님, 조금 우둔해도 나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의지하기를 배우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