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서의 시편 (시 119:121-136)

시편이 특이한 것은 분명 히브리식 시이지만 그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 혹은 다른 사람 혹은 자신에 대한 것도 있는 반면 많은 경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세상 노래와는 다르게, 읽으면 그대로 기도가 되는 내용이 많다. 특히 오늘 부분 역시 읽으면 그대로 기도가 되는데, 기도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그들 나름의 절대자에게 올리고 있지만, 정작 주님 오셨던 당시 제자들이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고 그들은 기도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구했다.

기도를 잘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소위 '영적'인데, 이 영적인 것이 좋은 쪽으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이 바라며 만들어 놓은 자신만의 절대자에게 구하는 이들은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건 어떤 잡귀이건 들어주는 영적인 존재라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시는 분에게 의뢰한다. 그리고 우리의 방법대로가 아니라 '주의 법''주의 계명' '주의 법도' '주의 증거' '주의 말씀' '주의 이름' 등 그 기도의 목적과 내용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시편기자는 그가 피곤한 이유도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 때문임을 말하는데, 그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주님께 맞추어져 있었고, 이것이 바로 온전한 기도를 할 수 있는 배경이고 온전한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가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했던 이유조차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 법도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134절).

이러한 사람의 특징은 자신만이 주님을 향하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도 누리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 법을 폐했던 지금이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 (126절)' 라고 아뢰했고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136절)'라고 고백한다.

주님, 내 마음과 생각이 오직 주님을 향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을 떠나 다른 것을 구할 때 허망하고 만족이 없음을 압니다. 오늘 내 안에서 역사하소서. 주를 따르며 하루를 기도의 날로 삼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