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동안 주를 부름 (시 120)
시 50:15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한다. 여기 '환난'과 '부르라'는 단어는 오늘 말씀 1절의 '환난'과 '부르짖었더니'와 동일한 단어다. '환난'으로 번역된 말은 '짜라ㅎ'로 '고통, 어려움' 등을 의미하는데, '환난'이라는 말은 소위 '대환난'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단순히 '고난' 혹은 '어려움'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죄에 묶인 인생 자체가 고통이지만 특히 믿는 자들의 삶은 더욱 고난이 많을 수 있는데, 믿음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못하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하도록 요구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고난의 연속이다.
삶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은 의인으로서 의인의 삶을 살기 원할 때 주위에 공존하는 진리를 거스리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혀들이다. 하나님의 영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거짓의 영과는 함께할 수 없는데,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은 마귀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벧후 2:7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라고 기록하는데, 롯은 실수가 많았지만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속에 살며 괴로와했고 이는 그에게 고통이었다. 거짓의 영은 진리를 거스러 싸우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따르 (히 12:14)'기 쉽지 않다. 같은 구절은 '화평함'만이 아니라 '거룩함' 역시 따라야 함을 말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구절은 '모두와 함께 화평함을 갈구하고 있으라 또한 그 거룩함을, 이것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단수로 '화평함'이 아니라 바로 앞 정관사가 붙은 '그 거룩함'을 의미하는데, 모든 사람 혹은 만물과 화평함을 좇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즉 거룩함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것에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다.
주님, 얼마나 우리 신앙생활이 피상적인지요.. 주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진정 화평함과 그 거룩함을 갈구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게 하소서.
한 개인으로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손해보며 살기란 쉽지 않음을 주님 아십니다. 공동체를 세우시고 함께 신앙을 추구하는 이들을 모으소서. 시간 허비하지 않고 모이면 기도하고 말씀을 깊이 나누며 삶 속에서 혼들을 구원하는 그러한 주의 몸을 세우소서. 주의 말씀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삶의 소유와 생명의 영 또한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세우소서. 이곳이나 선교지나 그 어느 곳이든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음을 믿습니다. 고난을 통과하지만 자유를 누리는 이 역설이 체험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