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고 섬세하신 좋으신 하나님 (레 19:11-18)

구약의 하나님은 뭔가 사랑의 하나님이라기 보다는 두렵고 막무가내인 분으로 가끔 인식되기도 한다.  사실 입장 바꾸어 놓을 수만 있어서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다면 그러한 모습이 전혀 이해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은 하나님께서 매우 인자하시고 섬세하시며 좋으신 분이심을 알게 될 때가 있는데, 시편에서는 매우 자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찬양드린 것을 볼 수 있다.

19장 거의 모두가 명령들이라 매우 딱딱하게 들리지만, 좀 더 부드럽게 번역을 했다면 꼭 그렇지만은 아닐 수도 있는데, 매우 흥미롭게도 히브리어에 분명 명령형이 있지만 여기를 포함해서 구약의 많은 명령들이 미완료형 즉 영어나 헬라어로 직역하면 미래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해라' 혹은 '~하지 말라'라기 보다는 '~할 것이다' 혹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가 된다.  막무가내로 명령하고 안지키면 죽여버리는 그런 고약한 분이 우리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는 온전히 지키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소망하며 미래형으로 말씀하신다.

특히 하나님은 매우 공평하시고 또한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인지 궁금할 정도로 섬세한 부분들을 만지는 것들이 적지 않은데, 15절은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라고 기록한다.  가난한 자들에 대해 항상 불쌍히 대하고 도와주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공의는 가난한 자나 부한 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하다고 일하기도 싫어하는 이들에게 부자들의 재물을 강압적으로 빼앗아다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자진해서 자신의 재물을 드림으로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왕국의 실현이다.

주님, 섬세하게 우리의 형편을 돌아 보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섬세하시고 인애하신 것 처럼 우리도 서로 섬세하게 또 공평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배우기 원합니다.  아직도 문제들이 많고 아직도 힘들지만, 우리 안에 소망을 두시고 기다리시며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