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나의 하나님 (레 19:19-37)

다른 종류의 가축끼리 교미시키는 것을 왜 금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타락한 인간은 그 보다 더 나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창의적'으로 만들려는 헛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는 돼지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린데, 당시 식용을 금하셨던 돼지와 소를 교미시켜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소를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의 구미를 당길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고, 같은 종 내에서만 교미가 가능하다는 것은 유전학적으로 이미 정립이 되었다.

창세기에는 (명확한 기록은 없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지만), 타락한 천사들이 하늘의 자리를 벗어나 땅으로 내려와서 인간의 여자들과 관계를 맺어 이상한 인물들을 낳았었고, 아마도 동물들과도 그러한 일을 벌여 또 다른 이상한 생물들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게 하는 구절들이 나온다. 아마도 노아의 홍수 사건은 이러한 것을 심판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20-22절은 정혼한 여종과 관계한 남자에 대해 언급하는데, 의아한 것은 그 후 이 여종에 대한 처사는 언급하지 않는다. '종'에 대해 구약에 여러 기록이 있고 신약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주종관계는 하나님께서 금하시지는 않았다. 다만 노예제도를 통해 다른 인종을 무력으로 잡아다가 노예 삼고 학대하는 일은 악한 것인데, 동족 내에서는 필요에 따라 종도 되고 또한 속량도 되었던 것을 본다.  이 '주종관계'는 현대에도 '계약'에 따라 얼마든지 존속하고 있다.

23절-25절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을 때 과목을 심은 후 다섯째 해가 되어야 먹을 수 있음을 말씀하는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 만나는 그쳤다. 그렇다면 그 후 그들은 무엇을 먹을 수 있었을까? '과목'은 열매를 맺는 나무를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주식인 밀 등은 허락하신 것일까? 어떻든 간에 이 현실적이지 않게 들리는 명령 뒤에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는데, 이러한 언급이 37절까지 8번이나 되풀이 된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참된 신이시며 '너희의 하나님' 즉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사랑을 관계를 맺으시는 인격적인 신이심을 말씀한다.

따라서 계속되는 명령과 더불어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마치는 것은 주께서 책임지시겠다는 의미다. 28절은 문신에 대한 흥미로운 언급이 있는데, '죽은 자 때문에'라는 단서가 붙는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문신을 하는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문신의 그 본 의미가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33-34절은 거류민들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대하고 사랑할 것을 명하시는데, 그 이유는 과거 그들 역시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좌파 혹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이들은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타민족들을 미국이든 한국이든 들여오려고 하는데, 과거 이스라엘에 명하신 이 명령은 그들 역시 여호와의 말씀을 지킬 것이라는 전제하에 허하신 것이다. 만일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이미 이주한 거류민들 외에도 해외에 있는 이들에 대해 무분별한 이민을 허락한다면 구약에 동시에 기록된 동성욕자들을 죽이라는 명령도 따라야 한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 생각에 좋고 의롭게 보이는 것만을 선택한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혹은 주되심 (혹은 주이심)을 믿어야 하는데, 이것이 믿음의 기본이고 기초다.

주님, 순간마다 주님의 주되심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를 섬기는 주의 종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나의 주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