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히 여김, 성화시킴 (레 21:1-9)

한글번역이나 영번역에 21장은 꽤 많은 명령어들이 있는 것 같지만 원어를 보면 1절과 17절에만 명령형 동사가 있는데, 바로 '말하라'이다. 그 외 명령형으로 번역된 모든 동사는 미완료형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특히 9절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는 말씀을 소위 '근본적'으로 해석해서 마치 이슬람교에서 아직도 행해지는 가족 특히 딸들에 대한 '명예살인' 처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그러한 행음한 딸에 대해 불사르는 것은 다른 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태로 그러한 이들은 불살라질 것을 말씀한다.

1절부터 9절까지는 제사장들에 대한 규례인데, 먼저 누가 죽었을 경우 직계 가족이 아니면 주검을 만지지 말것을 명한다. 생명이신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가 사망을 만짐으로 더렵혀지면 안되기 때문인데, 이러한 규례가 후에 주님께서 눅 10:31-32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바탕이 된다. 사실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인정머리가 없어서 강도당한 사람을 지나친 것이 아니라 구약 규례를 바탕으로 그들 자신을 더렵히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종교는 죽어가는 사람을 도울 수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없는 종교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살리는 영으로 주님을 믿을 때 죽은 이들로 살아나게 한다.

4절은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고 기록하는데, 백성의 어른으로서 과거 주검을 가까이 하면 안되었지만, 이제 주를 믿는 모든 이들이 왕족이며 제사장으로서 이러한 구약의 규례, 의문의 죽은 것으로가 아니라 영의 산 것으로 섬기는데, 따라서 육체적 죽음이 아닌 영적인 죽음에 대해 멀리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5절은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자기의 수염 양쪽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라고 기록했는데, 제사장들은 그래서 털을 자라는대로 놔둬야 했고, 이것은 나실인에 대한 규례와 비슷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모를 통해 제사장을 알 수 있었는데, 그와는 반대로 민 8:7는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되 곧 속죄의 물을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고' 라고 기록하며 오히려 레위인들에 대해서는 몸의 모든 털을 밀것을 명한다. 따라서 머리는 물론 눈썹까지 밀어야 했던 레위인들은 그 외모로 또한 확연히 구별되었다.

7절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함이니라'고, 그리고 8절은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그는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고 기록하는데, 8절의 원어는 '거룩하게 하라' 혹은 '성별하라'를 의미한다. 즉 '여기라'는 말은 없는데, 이 '거룩하게 하다' 혹은 '성별하다'에 '여기다'의 의미가 포함된다.

특히 하나님은 지금 모세에게 말씀하시는데, 모세의 눈으로는 그들이 전혀 거룩해 보이지 않지만, 그들을 구별 혹은 성별해서 거룩히 여기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소위 '담임 목사'가 '협력 목사들'에 대해, 혹은 일을 맡긴 소위 '평신도들'에 대해 '여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유익할 듯 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거룩한 자들 즉 성도들로 여겨야 하며, 특히 이미 선 자들은 아직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거룩하게 여겨주며 그들을 세워야 한다.

이 '여기다'는 말은 특히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등에 쓰였는데, 믿음은 이러한 '여김'으로 시작한다. 눈으로 보면 전혀 거룩하지 않지만 이러한 여김을 통해 성화는 시작한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 처럼 믿음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 보며 대하기 원합니다. 서로 미흡하지만 세워주며 사랑할 수 있는 믿음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