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으실 만한 제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레 22:17-33)

제물이나 헌물이나 헌금 등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드리는 것이 온전하고 흠이 없어야 하는데, 만일 흠 있는 것을 드리기 시작하면 그것이 습관처럼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고 후에는 드리는 데에 큰 의미가 없어지며,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다 쓰고 남은 것, 나에게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하자가 있는 것들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나 혹은 선교지를 쓰레기장 취급하는 것과 같다. 사람 사이에서도 다른 이가 나에게 선물을 줄 때 그에 대해 내가 기쁘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는데, 물론 그 물건의 가치를 떠나 정성이 깃들여 있다면 감사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라면 서로간의 기쁨 즉 관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욱 드러한데, 그래서 시간, 물질, 관계 등 우리의 가장 좋은 것 드리기를 연습해야 한다.

그렇다고 선물이 뇌물이 되면 또 안되는데, 그것 역시 '기쁨'과 관계가 있다. 서로 선물을 받고 기쁨으로 좋은 관계로 나아가면 바람직한 것이지만, 무언가 돌아오는 대가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참된 선물이 아니다.

'기쁘게 받으심'으로 번역된 '랏짜'라는 히브리어 단어와 거기에서 파생된 '랏쫀'이라는 말은 '받으실 만한' 혹은 '좋은 뜻' 등을 의미하는데, 신약에서는 이와 동일한 헬라어 단어가 물질 즉 헌물에 대해서 빌 4:18에 나오지만 롬 12:1-2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되었는데, '기뻐하시는'은 '받으실만한'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가장 좋고 귀한 것을 드려야 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것에는 그러한 것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아버지께서 받으시는 것은 참 제물되신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모든 형태의 제물로 삼아 드리며, 우리 자신도 드리고 우리 소유와 시간도 아울러 드릴 때 이것이 바로 주 앞에 '기뻐하시는' 혹은 '받으실만한' 것이 된다.

주님, 제가 얼마나 받으실 만한 것을 드리는지요.. 주 앞에 드리는 훈련을 온전히 배우기 원합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의 참 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 안에서 우리 역시 바쳐지며 부어지는 제물들 되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 열납되는 삶이 됨으로 영적 섬김과 예배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