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하지만 아직은 (레 26:27-39)

오늘 구절은 어떤 가정하에 무엇을 하면 혹은 하지 않으면 어떠할 것이다를 말씀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예언적 말씀이다. 예를 들어 '산당'이라는 말씀이 구약 여기에 처음 나오는데, 이 말씀을 주신 때는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은 때이므로 산당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산당이라는 히브리어 바마흐는 '높은 곳'을 의미하지만 문자적으로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되는 그 '산당'과 동일한 단어다. 더우기 과거 이집트는 산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산당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행할 일들에 대해 아시고 말씀하시는, 즉 예언하시는 것이다. 더우기 33절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또 34절 '그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35절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 등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아셨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 이러한 것을 즐기는 고약한 하나님이실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실까? 이러한 질문을 갖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죄성으로 가득한 존재임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역사를 이끌어 오신 분께서 그 가운데 자신의 죽음을 포함시키셨다. 그리고 그 죽음은 단지 또 하나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만유를 하나님 자신에게 속량하는 죽음이었다. 오늘 말씀 역시도 가정완료형 동사가 많이 쓰이는데, 이러한 것은 가정하에 있지만 이미 완료한 것을 나타내는 의아한 형태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임한 것은 완료지만, 동시에 그분의 용서하심과 속량하심, 그리고 새롭게 하심과 임재하심 또한 충만케 하심 역시 완료된 상태다. 다만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 그 때 비로소 이미 이루었지만 아직은 경험되지 않은 것들을 믿음으로 누린다.

주님, 내 마음을 다시 열기 원합니다. 주께서 이미 이루신 놀라운 것들을 오늘 누리며 나누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