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주의 것 (레 27:14-25)

집이나 밭에 대해 여호와께 바치거나 바친 것을 무르려 할 때에 대한 규례다. 14절 '사람이 자기 집을 성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할 때는 어떤 때일까? 왜 자기 집을 성별해서 드리려 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그러한 이유 보다는 그 방법과 혹은 후에 무르려 할 때에 관해 기록한다. 흥미로운 것은 십일조나 예물 등은 바치면 끝나지만 집이나 밭 등 즉 부동산은 무를 수 있는데,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과 터전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원래 받은 값의 20%를 더해서 무른다.

밭 역시 마찬가지인데, 집에 대해서는 희년까지 기다린다는 기준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밭 즉 땅에 대해서는 희년의 기준이 적용된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공산국가들이나 현재 이슬람 혹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렇게 땅에 대해 50년 렌트를 아직도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기원이 어디로부터인지 궁금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 이 '희년'이 이러한 원리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땅에 대해 '사고 (22절)' '파는 (20절)' 것이 있음에도 모두 렌트의 개념이다. 다만 원주인이 무르려 하지 않을 때나 희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팔았을 때는 그 밭이 제사장의 소유가 된다. 이것은 땅에 대해 분란이나 소송을 막기 위함이지 제사장이 개인적으로 갖기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22절이 그와 반대로 그러한 밭을 산 사람에 대해 말하는데, 거기에는 희년의 원리가 적용되어 본래 주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개역개정은 21절을 '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 라고 번역해서 마치 그렇게 바쳐진 땅에 대해서는 제사장이 영원히 소유할 것 처럼 들리지만, 킹제임스는 '그러나 희년이 되어 그 밭이 나갈 때에는 전적으로 봉헌한 밭이 되어 주께 거룩하므로 그 밭의 소유가 제사장의 것이 되리라'고 번역하며, 공동번역은 '그 상속권은 사제에게 있다' 라고 기록하고, 히브리 원어에도 '제사장의 소유가 될 것이다' 정도로 되어 있다. 따라서 아마도 제사장의 소유가 된 땅 역시 분란의 요소가 사라지면 제사장이 판단해서 원주인이나 그 외 다른 이에게 돌릴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제사장의 소유가 될지 분명하지 않다. 땅은 오직 여호와께 속했다.

주님, 주께서 하늘들과 땅의 진정한 소유주이심을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는 다만 렌트해서 살 뿐이고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며 주께 감사하기 원합니다. 땅으로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이들이나 착취당하는 이들이 그날에는 사라질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