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안 그리고 하늘에 있을 때 (계 4장)

이제까지 내용이 이해하기 만만치 않다면 4장 내용은 더욱 인간의 이해로는 황당하게 들리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는데, 먼저 1:10 처럼 '영 안에' 있을 때이다. 요한은 다시 '곧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2절)' 이러한 내용은 우리의 육신의 어떠한 것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또 하나는 이러한 모든 계시들은 '하늘'에서 보았는데, 1절은 '이리로 (하늘) 올라오라'는 말씀에 따라 2절 요한은 '영 안에 있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4장의 '하늘' 즉 1절과 2절의 이 '우라노'는 모두 단수인데, 보통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하늘'은 복수 즉 '하늘들'이지만, 여기에는 모두 단수로 쓰였다. 그 이유는 이 '하늘'은 소위 삼층천 즉 하나님께서 계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오직 '영 안에 있을' 때 볼 수 있는 바로 그 곳 (정관사 호 우라노) 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아직도 밧모 섬에 갇혀있고 늙은 몸의 요한이지만, 영 안에 있을 때 그는 하늘로 인도되었고 모든 것을 초월해서 주님의 거룩하심과 그 권능을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 앞에 '하늘에 열린 문이 있'었는데, 3:8의 '열린 문'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것이지만 이제 그가 영 안에 있을 때 듣기만 했던 열린 문을 보았다. 요한의 때는 아직 빌라델비아 교회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였지만 (물론 그 당시 소아시아의 공간적인 빌라델비아 교회는 존재 했었지만) 영 안에 있게 될 때 그는 미리 열린 문을 보았고 그 문을 통해 주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 갔다.

그 보좌와 주위에 대한 언급은 이 세상의 어떠함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에 '~같더라'고만 말하지만 그가 본 것은 과거 구약에 잠간 비춰진 하나님의 보좌와 비슷한데, 놀라운 것은 8절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고 고백하고 창화하는 것이다. 과거 이사야가 본 이상에서는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사 6:3)'로 기록하는데, 여기에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가 추가된 것이다. 이것은 과거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신데, 이 분은 과거 구약시대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지만, '장차 오실 이 (원어로는 지금 오고 계시는 이)'시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는데,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바로 영 안에 있고 하늘에 있다. 현실을 살지만, 진정한 현실 (진리, 알레떼이아)은 바로 영 안의 하늘이다. 오늘도 주님은 다스리신다.

주님, 주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과 다스리심을 오늘도 믿게 하소서. 주 이름 안에 모일 때 영 안에 있게 하시고 하늘에 있게 하셔서 우리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하는 삶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