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론과 살아계시며 통치하시는 하나님 (계 11:15-19)

15절의 '세상 나라'는 원어로 '세상의 왕국'인데, 이 왕국은 단수이다. 세상에는 많은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들 (9절)'이 있지만 결국 이들은 모두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있는 하나의 왕국이며, 이제까지는 하나님을 대적해 왔다. 하지만 요한복음 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해온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세상 즉 그 안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시스템, 코스모스' 즉 만유를 사랑하셔서 독생하신 (모노게누스) 아들을 주셨다. 주님의 죽고 부활하심은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만유를 새롭게'한다 (21:5).

또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구별하는 것 같지만 '다스리시리로다'는 단수형 미래시제이다. 즉 '그들이 다스리실 것이다'가 아니고 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는 하나이시기에 '그가 다스리시리로다'가 된다. 그래서 17절을 킹제임스역은 '이르되, 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께 우리가 감사를 드림은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셨기 때문이니이다' 라고 번역했는데, 이 '지금도 계시고.. 오실' 구절은 지난 1:4, 4:8 그리고 앞으로 16:5에도 나온다.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분명 계셔왔고, 지금 현재도 계시며 또한 이제 오고 계신 (현재진행형) 분이심을 증거한다.

시편 14:1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라고 시작하는데, 현대 물리학은 소위 '다중우주론'을 상상해 내었다. 이는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이지만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들은 이러한 것들은 상상해 낼 수 있으면서, 이제까지 계셔왔고 (원어) 지금도 계시며 이제 오고 계시는 분은 부러 잊는다 (벧후 3:5). 주님은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셨다'!

18절 역시 킹제임스가 잘 번역했는데, '민족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이르렀고 죽은 자들의 때가 이르렀으니 이것은 그들이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요, 또 주께서 주의 종 대언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주려 하심이며 또 땅을 멸하는 자들을 멸하려 하심이니이다, 하더라'고 되어 있다.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고 (히 9:27), 동시에 주의 백성들에게는 보상이 있다. 그래서 요즘 소위 YOLO라는 유행은 매우 반기독교적인 풍조다.  흥미로운 것은 '땅을 멸하는 자들을 멸하려 하심이다'라는 언급인데, 이 '멸하다 diaphtheiro'는 '부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타락시키다 decay, corrupt'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늘에서는 이루셨지만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마 6:10), 땅을 정복하라는 의미를 오역해서 개발을 넘어 이 땅 지구를 황폐시키고 부패 혹은 타락시키는 이들은 하나님께 멸망당한다. 여기 때 '카이로스'가 있는데, 바로 이 때다.

19절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말하는데, 이 하늘의 성전은 계속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예전 땅의 성전은 지성소가 막혀서 그 안의 언약궤는 보이지 않았지만, 주님의 죽으심으로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서 둘이 되어 그 안 비밀했던 것들이 드러났었다 (마 27, 막 15). '성전이 열리니'의 시제는 아오리스트 직설법으로 보통 과거로 번역되는데, 이미 열려져 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거룩하기에 지성소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요한은 그 안의 언약궤를 볼 수 있었는데, 과거 성전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지만, 하늘의 성전은 땅 위 그것의 원조이다. 주님의 경륜은 신약에서 갑자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의 성전에서 시간을 초월한 언약에 기반한다. 그래서 어린 양이신 주님은 '일찍이 죽임을 당'하셨다 (계 5:6).

주님, 세상은 정신없이 발전하고 변하는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경륜과 통치 아래 있음을 봅니다. 그 때에 주 앞에 상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될 수 있도록 이제껏 계셔 오신 주님을 믿고, 오늘 계시는 주님께 붙어 있으며, 이제 오고 계시는 주님께 소망을 두게 하소서. 주의 전능하심이 우리 믿는 자들의 삶 속에 역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