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삼년 반, 그 시작과 휴거 (계 12)
12장은 '그리고 큰 이적 kai semeion mega'이라고 시작한다. 3절에도 나오는 이 '이적'으로 번역한 단어는 계시록에 여기 처음 나오는데, 신약에 77번 나오는 말로 보통 '표적' 혹은 '이적'으로 번역되었다. 앞의 기록이 모두 요한이 영 안에서 직접 본 것이라면 12장 내용은 '이적' 혹은 '표적'을 본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따라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초월한 일을 기록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게 생각되지만, 1260일 혹은 삼년 반을 언급하기 때문에 이것은 모두 시간 상의 즉 크로노스 상의 사건들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
6절은 이 여자가 광야로 피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처소에서 1260일 동안 양육받는다고 하는데, 따라서 이 여인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과 오신 이후의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라고 풀이한 생명의 삶 해설에는 문제가 있다. 그렇게 하면 이 1260일 역시 '영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여인이 '교회'라고 다시 해설한 것 같다. 여자는 '양육'을 받는데, 원어는 trepho로 '음식'을 의미한 trophe에서 왔다. 이 여자는 '교회'이기에 따라서 이 여인이 해산의 고통을 통해 낳은 사내 아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철장으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자'라는 문구에 원어에는 mello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의미는 '이제 곧'이라는 것으로, 이미 세세무궁토록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와는 다르다. 특히 '모든 민족 ethno (혹은 만국)'이라는 말은 신약에 163번, 또 계시록에서도 꽤 많이 나오는 말인데, 22장 2절까지도 나온다. 즉 소위 천년 왕국 이후에도 이 '민족들'이 존재하는데, 이 때의 모든 민족들은 계시록의 재앙들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이들 특히 천년 왕국 후 잠간 놓인뱀의 미혹도 통과한 이들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했기에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은 없는, 이 '사내 아이'에게 다스림을 받게 되는 이들이다. 따라서 소위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다.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올려가더라'는 말 harpazo는 꽤나 중요한 단어로 신약에 14번 나오는데, '휴거'를 말할 때 쓰였다 (행 8:39, 고후 12:2, 4, 살전 4:17). 그래서 이 여자가 해산의 고통 중에 낳은 사내 아이는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서 먼저 익은 열매 혹은 곡식이며 이들은 아직 설익은 교회 전체 가운데 먼저 휴거를 받는다. 계 14:4은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라고 기록하는데, 이 십사만 사천을 '처음 익은 열매'라고 말한다. 이 사내아이가 (지난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아닌) 십사만 사천과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휴거'를 의미하는 단어가 계시록에서는 여기 처음 나온다는 것이다.
3절은 '또 다른 이적'을 기록하는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인 큰 붉은 용이 그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다고 한다. 1절의 '관'은 명예를 의미하는 stephano이지만 여기의 관은 '왕관' 즉 정사를 말하는 diadema로 되어 있다. 큰 용은 사탄이 분명하지만 (9절), 이 '왕관'은 권력을 말하기 때문에 땅으로 내려와서는 일곱 왕들의 권세로 나타난다. 먼저 여자가 용을 피해 광야로 도피하지만, 이 용 역시 7절 하늘의 전쟁에서 땅으로 내쫓기는데, 따라서 이 용은 땅에서 여자를 해하려고 하고, 이에 대해 여자는 광야로 도피해서 1260일을 양육받는다. 13절은 용이 이 세상 권력 혹은 일곱 나라들과 그 왕들 그리고 열 뿔의 모습으로 교회를 박해할 것을 보여주는데, 14절은 여자가 이러한 박해를 피해서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의 처소로 날아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즉 1260일을 양육받게 될 것을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은 소위 대환난 두번 째 삼년 반 동안 교회 역시 아직 이 땅에 있을 것을 암시해 주는데, 흥미로운 것은 '광야 곧 그녀의 처소'라고 하며 세상 교회들 중 아직 휴거받지 못한 이들이 광야 어떤 곳으로 모두 모이게 될 것을 말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이동일텐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앞서 많은 재앙으로 땅과 바다가 뒤틀려서 이미 해안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10절은 사탄에 대해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말하는데, '우리 형제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이들로서 그들은 성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탄은 이들에 대해 하나님 앞에 밤낮 참소했다고 한다. 즉 이들은 인간으로서 완전하지 못했지만, 다만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다. 하지만 이것이 간단한 일은 아닌데,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목숨을(원어 ㅍ쉬케) 아끼지 아니하였다'고 하기 때문이다.
13절은 '용'이지만 14, 15절은 '뱀'인데 이 둘은 동일하다 (9절). 광야로 피한 여자에 대해 이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했지만 (15절), 16절은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즉 아마도 지진 비슷한 것이 일어나서 광야로 피해서 양육받고 있던 여자를 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상'이지만 매우 현실적으로도 들린다.
17절은 매우 흥미로운데, 땅이 입을 열어 여자를 구하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라고 한다. 이 '돌아가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우선 돌이킨 것을 말하는데, 이제 곧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기 위함이다. 12절은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라고 하지만, 광야에서 보호받는 이 여자는 이쯤해서 많이 휴거를 당하고 이제 '남은 자손 (원어로는 남은 씨)'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다'의 원어는 loipos로 영어 left, left behind, remnant, remains 등을 의미한다. Left Behind 라는 제목의 휴거를 다룬 영화에서는 이 '남은 자들'이 믿음이 없어서 미처 휴거를 당하지 못하고 버림 받은 자들로 묘사했는데, 물론 그러한 의미도 있지만, 여기처럼 마지막에 용과 싸우기 위해 남김을 받은 자들일 수도 있다. 이들은 이쯤해서 믿음이 약한 이들이 아니라 이제 광야에서 양육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예수그리스도의 증언을 가진 자들'이다.
주님, 어린 양의 피를 다시 한번 묵상하며 그 피로 나를 적십니다. 내 입술로 주의 말씀을 증언하며 나의 목숨을 아끼지 않게 하소서. 이 모든 마지막 때 벌어지는 일들이 나의 믿음을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정결하게 된 믿음을 소유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