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오게 될 특이점 (계 13:11-18)

13절 후반 9절로서 비교적 짧은 부분이지만 계시록 중에 제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구절이다. 여러 호러영화의 바탕 혹은 주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계시록은 아직 반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이 부분이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지만 결말은 아직 멀었다.

11절은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하는데, 지난 1절의 '바다'에 비해 이 '땅'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고 본다. 즉 이스라엘, 특히 그 땅 유대인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나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스라엘의 어떤 조직으로 볼 수도 있다. 아마도 어느 한 개인일 확율이 큰데,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어서 자신을 어린 양 즉 그리스도처럼 보이도록 가장한다. 하지만 말은 '용처럼' 즉 신성모독하는 말을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하나님을 또 아버지를 경배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이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처음 짐승, 특히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를 경배하게 한다. 특히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능력들을 행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 이 능력은 과거 엘리야나 혹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셨던 하나님만 보이실 수 있는 능력인데, 여러 영화들은 현재 과학 기술로 이러한 것이 앞으로 가능할 것을 보여준다.

14절은 지난 '죽게 되었던' 짐승이 어떤 상처인지 기록하는데, 원어에서는 '그 칼의 상처를 소유한'이라고 기록한다 (물론 사본에 따라 '칼'이 빠진 것도 있다). 13장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를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비유 혹은 상징적으로 이해할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13장 전체 내용은 매우 상징적으로 보인다. '짐승'을 말하지만 생물학적인 짐승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도 문자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제 현대에 와서 '칼로 상처를 입'는 것이 어떻게 나타날지도 고민해 봐야 하는데, 정말로 칼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현대에 나타난 여러 현상들에 적용하면 컴퓨터의 'cut'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제 현시대는 컴퓨터나 전기 없이는 사는 것이 불가능한데, 여러 컴퓨터 시스템은 항상 오류나 오작동 혹은 셧다운이 불가능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하지만 이 '짐승' 중 하나가 현대 나타난 여러 컴퓨터 혹은 네트워크 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 '칼의 상처'는 시스템 오작동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오작동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혼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만일 이러한 전세계적인 오작동이 있다가 복구 되었다면 온 세상이 알것이고 또한 따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땅에서 나온 짐승은 그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 것을 말하는데, 이 '형상'이라는 말도 현재 컴퓨터에서 많이 쓰이는 '아이콘'의 어원 eikon이다.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그 때에는 현현되어 눈으로 볼 수 있는 아이콘이 되는데, 이러한 '짐승의 우상'에게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라고 기록한다. 현재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두되는 AI 즉 인공지능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특히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해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는데, 이것은 이제 계속되는 소위 big data를 통해 그 기반이 마련되는 상태에 이미 와 있고,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현상이 이미 현실 삶 속에서 적용되고 있다.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 즉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을 거부하는 자들은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역사를 통해 배웠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나 부요함은 역사 이래 그리 길지 않은 것이다. 이 '표'가 소위 '베리칩'일지 아니면 어떤 다른 것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현재 과학기술의 개발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AI가 완성되는 때를 '특이점'이라고 부르는데, 그 완료가 멀지 않고 바로 이 15절 즈음해서 현실에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표' 없이는 '매매' 즉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17절은 원어로 그 표가 '그 짐승의 그 이름 혹은 그 이름의 그 수'라고 되어 있는데, 다시 말해 그 표에는 숫자가 있고, 그것은 짐승의 이름일 것을 말한다. 그래서 18절은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고 하는데, 과거 헬라권에서 수를 더하는 일은 매우 번거로왔다. 그래서 셈을 할 수 있는 이들을 '지혜로운 자'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 숫자는 지혜있는 즉 셈을 할 수 있는 자들이 계산을 해야하는 것임을 말한다.

생명의 삶 해설은 이 숫자가 과거 네로 황제를 의미한다고 말했고, 또 이에 대해 여러 해설은 이단으로 빠지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나 헬라어 알파벳은 각자 숫자로 매길 수 있어서 '네론 카이사르'라는 헬라어의 각 알파벳을 더하면 666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영어도 각 알파벳에 숫자를 매길 수 있는데, a를 6으로 시작해서 계속 6의 배수로 수를 매기면 computer라는 단어의 결과가 666이 된다. 놀랍게도 Adolf Hitler라는 이름 역시 666이 되는데, 앞으로 어떤 이름이 히브리어나 혹은 헬라어 혹은 영어의 조합으로 666이 될지 궁금하다. 이것은 바로 그 짐승의 그 이름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18절이 원어로 '그 짐승의 수, 곧 사람(단수, 어떤 혹은 한)의 수이다. 그리고 그 수는 666 (이다)'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