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죽기를 (계 14:14-20)
지난 구간이 13절에서 끝났지만 오늘 부분과 연결시킬 수도 있는데,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짐승과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표를 받지도 않음으로 죽임을 당하는 이들이며 또한 14-16절의 주님의 낫에 의해 수확되는 곡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낫'에 의해 거두어지는 이들로 표현되는데, '홀연히 변화되'는 휴거를 말하는지 아니면 죽임을 당하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궁금한 것은 생명의 삶 해설에서 마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는 구절을 연계했는데, 이 추수 때가 14-16절의 추수를 말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마태복음에서는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 14장에는 '곡식'이라는 단어는 없고, 단지 '수확'을 추수하라고 하는데 이 '수확'이나 '추수하다'라는 명사형과 동사형으로 같은 말이다.
17-20절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라'고 하는데, 복음서에서 쓰였던 포도 나무나 포도와는 다른 의미로 나온다. 땅의 수확에 대해서는 '거두다'가 'therizo'라는 단어인 반면, 이 포도송이들을 거두는 말은 'trugao'라는 말로 포도를 '따다' 정도에 해당한다. 여기 계시록 14장을 제외하고는 눅 6:44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는 구절에만 나오는 걸로 보아 '포도'를 수확하는 것에 특별히 쓰이는 말이다. 이 '포도송이들'은 심판을 받아 피를 모두 쏟아서 그들에게서 흐르는 피가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고 하는데, 이는 마 13:30에서 '불사르'는 것과는 다르다. 불 심판은 둘째 사망 즉 20:14에 나오는 것이다. 천년 왕국이 끝나고 20:12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라고 기록하는데, 여기 이 '죽은 자들'은 여기 14장에서 죽은 이 포도 송이들도 포함될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두번 죽는다.
주님, 구원이라는 것이 쉽지 않음을 봅니다. 우리의 힘이나 선택이나 능력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이 확실한 것에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단 한번, 육신의 죽음만 경험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