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님 (계 18:1-8)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들을 보고 있자면 열불이 난다. 좌파 세력들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놓고 옹호하며 여러 정책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배후는 영적 싸움이지만, 자유진영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이에 대해 단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대립 정도로, 혹은 그보다 못한 좌파와 우파 사이의 갈등 정도로만 본다. 이지경까지 된 것은 이제껏 소위 우파에 속한 이들 즉 자유진영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발란스가 필요한데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자본과 이익에만 올인했다.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이 성경적이지 않은데, 그 기본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물론인 것은 물론이고, 보편적인 절대평등이라는 현실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성경 특히 사도행전 초반에 발생한 초대 교회에서 그 비슷한 실행이 있었지만 그 조차 지속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역사도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가능했는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도 않고 그 도움을 구하지도 않으며 오직 인간들의 능력으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또 다른 종교에 지나지 않으며 동시에 이는 또 다른 바벨탑이다.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산업혁명 후에 발생했다고 하지만 그 기본적 요소는 자본 혹은 돈 즉 맘몬을 추구하는 것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한 직후부터 존재해 왔다. 자본주의의 여러 폐해에 대항해서 생겨난 것이 공산주의인데, 말할 것도 없이 이제는 폐기된, 역사적으로 실패로 드러난 사상이며 사람들의 기본 인권이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전혀 성경적일 수 없다. 자본주의는 적어도 개인소유권과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현 세상에서는 아직 이를 대체할 만한 정책이 없다.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크게 성공한 이들 중에 자발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며 공헌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억압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역시 전혀 성경적인 것은 아닌데, 자본을 사람이나 영혼보다 중시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 자체의 가치 기준이기 때문이다. 2절에 다시 등장하는 '큰 성 바벨론'은 그 모습으로 보아 파산한 공산주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바벨론에 대해 2절은 원어로 '다이몬들의 거처와 모든 더러운 영의 감옥과 모든 부정한 새의 감옥과 모든 부정하고 역겹게 여겨지는 피조물들의 감옥이 되었다' 라고 말하는데, 개역개정의 '귀신'이라는 말은 소위 '사람이 죽어서 된 혼백' 정도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올바른 번역이 아니다. 이 '다이몬들'은 보통 물 속에 거하며 특히 바다에 그 처소를 정한 것으로 성경은 말하지만, 2절에는 특이하게도 이 큰 성 바벨론 안에 그들이 처소를 삼았다고 한다. 자본주의를 통해 생산되는 여러 가지 화려해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는 이 '다이몬들'이 존재한다.

여기 '처소'라는 말은 'katoiketerion'인데, 신약에 단 두번 나오며 동일한 말이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즉 '하나님의 처소'라는 문구에 쓰였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이지만, 이 큰 성 바벨론은 다이몬들이 거하는 처소이다. 또한 '모든 더러운 영의 감옥과 모든 부정한 새의 감옥과 모든 부정하고 역겹게 여겨지는 피조물들의 감옥이 되었'는데, 겉으로는 크고 멋진 성이지만 그 내부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혹은 세상의 이면인데, 속으로는 이렇게 이 더러운 것들이 모이는 것에 비해 겉으로는 음행이 만연하며 사치와 치부로 화려해 보인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과 이자를 바탕으로 투자하여 더욱 부를 축적하는 것인데, 그 가운데 부익부빈인빈은 물론이고 불로소득 등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인생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은 '죄들 (4절)'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받을 재앙들이 뒤따른다 (4절). 자본주의에 입각해서 만들어 놓은 인간의 법들은 하나님 앞에는 '불법'이고 (5절), 이에 따른 모든 절차와 정책 그리고 집행 즉 행위들 (6절, 복수)은 모두 그 응당한 보응과 심판을 받는다. 단지 그만큼의 심판이 아니라 '두 배'를 받는데, 그 죄들의 무게가 매우 무겁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모든 '영화'와 '호화로움'은 주님 보시기에 악하다. 바벨론은 '한 날'에 재앙들이 임하는데, '사망과 애곡과 기근'이 단 하루에 임한다. (개역개정의 '흉년'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세상에서는 그 큰 성 바벨론이 강하고 영광스럽고 화려해 보여도 단 하루만에 망하는데, '그녀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자본주의 속에서 믿음을 먼저 두며 서로 아가페 사랑 안에서 나눌 수 있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소서. 우리의 생각이 반드시 변화되어야 하며 주의 말씀을 통해 바뀌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우리로 주의 왕국의 그 다스림과 그 생활을 배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