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영, 예언의 핵심인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 (계 19:1-10)

19장에는 '할렐루야'라는 말이 4번 나오는데 신약에 계시록에서만 이 말이 나온다. 구약에도 많이 나올 것 같지만 시편에만 23번 나오는데, '할랄 (찬양하다)'과 '야 (여호와)'의 합성어로 명령형이다. 이 말은 찬양과 승리의 선포이다. 계시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땅을 더럽힌 음녀가 심판을 받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제 모든 수고가 끝나고 승리했다.

6절 후반부는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라고 하는데, '통치하다'의 시제는 아오리스트 직설법이며 보통 과거로 번역하지만 '통치하셨다'라고 하면 이상한 번역이 되기 때문에 이 아오리스트 직설법은 과거로만 해석할 수 없고, 시간을 초월한 시제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은 과거 현재 미래는 물론이고 시간 자체를 초월한다.

7절의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는 시제 역시 동일한 아오리스트 직설법인데, 논리적으로라면 현재완료형이 맞겠지만 그리스도의 아내 즉 교회 혹은 신부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일찍 죽임을 당하셨던 것 처럼 이미 영원전부터 준비가 되었다. 계시록의 기록은 지금 시간 안에서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님의 예정과 경륜 안에서는 이미 이루어졌고 따라서 요한은 이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이것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8절은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아내에게 '고운 세마포, 빛나며 정결한 옷을 입도록 주셨는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한다. '아내'는 단수지만 이 아내는 '성도들' 즉 다수의 구원받은 이들과 동일한데, 그들은 곱고 빛나며 정결한 세마포 옷을 받는다. 이 옷을 하나님께 받지만 (원어참조) 동시에 그 옷은 그들의 옳은 행실이다. 이 말은 그들 자신의 행위 자체가 옳다는 것이 부각되는 것 보다는 그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의미다. 인간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한다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이 '세마포 businnos'라는 말은 계시록에만 나오는데, 마 22:11-12에는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이라고 비슷한 말이 기록된다. 여기 '예복'은 문자적으로 '결혼 예복'이라는 의미인데, 오늘 말씀에는 '예복'이 아니라 '세마포 옷'이지만 어린양의 결혼을 기록하기 때문에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흥미로운 것은 마 22:10절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고 기록하는데, 어린양의 아내인 '성도들'이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다만 그들은 잔치에 초대되어 그 부름을 받고 왔는데, 순종하고 올 때 그들은 예복을 받는다. 그 예복을 빨고 입는 것은 그들에게 달렸다. 어린 양의 신부는 이러한 예복을 믿음으로 받고 빨고 입을 때 준비가 된다. 그래서 다시 마 22:14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고 말씀하며 이는 지난 17:14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와 연결된다.  우리는 부르심만이 아니라 택하심까지 받아야 하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예복 혹은 세마포를 받을 때 가능하다. 여기에는 순종이 따른다.

9절에서 요한이 천사에게 절을 하려하자 천사는 10절에서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라고 말한다. '같이 된 종'이라는 말은 한 단어로 '함께 sun 종 dulos'의 합성어이다. 요한과 형제들은 모두 '성도들'로서 어린양의 신부의 일부이지만, 이 능력많은 천사는 그리스도를 섬김에 있어 모든 믿는 이들이 '종'인 것 처럼 '종'일 뿐인데, 천사는 모두 '섬기는 영'이다 (히 1:14). 하지만 아내 혹은 신부는 어린양과 동일한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 같은 (크리스천) 거룩한 존재다. 그래서 천사는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하는데, '경배하라' 즉 '절하라'의 시제는 '현재진행형 명령형'이 아니라 '아오리스트 명령형' 즉 존대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명령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나 믿는 이들이 서로에게 부탁할 때, 그리고 마귀에게 말할 때 조차 쓰이는 말인데, 우리가 마귀에게 절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영적 권위는 인정하기에 미가엘 조차 비방하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유 1:9). 지금 이 영광이 충만한 천사는 (18:1) 요한에게 '그렇게 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께 절하세요' 라며 예를 갖추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천사보다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10절은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는 흥미로운 기록을 하는데, 이 '예수의 증언'이라는 말은 '예수의' 즉 소유격이지만 예수님 당신 자체의 증언인 동시에 주님을 증언하는 성도들을 포함한다. 즉 '예언의 영'은 예수님을 증언하게 하는데, 예수님에 대한 증거가 핵심이며 이 '영'과 '예언'이 주님께 속함으로 온전히 주님을 가리키며 증거하기 때문이다.

주님, 영 안에서 이미 이루며 승리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오늘 그 예복을 받고 준비되는 주의 정결한 신부 삼으로서. 성도들이 진정 거룩한 주의 신부로 설 수 있도록 그 날 준비될 것을 봅니다. 부족한 저도 그 가운데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