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기 위해 두려움을 내어 쫓고 싸움으로 나아감 (계 21:1-8)

모든 심판이 끝나고 요한이 본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었다. '그 처음 하늘과 그 처음 바다'는 사라졌는데, 요즘은 물리학적으로도 이러한 일이 발생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아마도 물질적으로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처음 옛 것에서 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졌음'을 말하는 것으로 들리는데, 5절 원어는 '보라 (아오리스트형, 보시오) 내가 만물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만들다 poieo 현재진행형)'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창조하다'와는 다른 말로, 이미 있는 재료들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두번째로 본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단장된 새 예루살렘이었는데, 단지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이다. 이 새 예루살렘은 아름답게 단장되었는데, 그 모습이 '자기 남편을 위하여' 즉 자기 남편의 어떠함과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 준비되며 단장되었음을 말한다. 원래는 땅에 속해있던 인생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생명을 통해 하나님과 동일한 생명을 소유함으로 변화되고 하늘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누리며 하나님 혹은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온전히 소유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의 놀라운 새 예루살렘이 그냥 하늘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 내려 온다.

이것은 3절에도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을 말씀한다. 과거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불가능했다. '함께 있다'는 원어로 '함께 장막칠 것이다'로 되어 있는데, 과거 광야시대 단지 장막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던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원어로 장막치다)'라는 말씀처럼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덮으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 즉 '사람 anthropon'은 근원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도들'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다.

계속 '처음'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처음 하늘, 처음 땅, '처음 것들'의 '처음'은 '옛'즉 '원래'라는 말과는 다르다. '원래'는 좋았고 아름다왔다. 하지만 마귀의 반란과 인류의 범죄로 모든 것이 '처음' 것이 되었고, '첫 사람' 아담 즉 인류는 범죄한 '아담류'가 되었다. 하지만 '둘째 사람'인 그리스도로 인해 이제 모든 것이 회복을 넘어 원래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으로 완성된다.

6절은 거의 모든 번역본들이 '이루었도다 (완성하다)' 정도로 번역했는데 '이루다'는 말도 그리 틀리지는 않았지만 원어는 '되다 ginomai'이며 3인칭 복수완료형으로 되어 있다. 즉 주님께서 다 이루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다 (원래 계획하신 대로) 되었다라는 의미로 본다. 그러면서 다시 당신에 대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그 샘으로부터 목 말라하는 자에게 값없이 줄것이다 이기고 있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긴 자'가 아니라 현재 '이기고 있는 자'이다. 이러한 이가 바로 온전히 '믿는 자'이다.

그와는 반대로 '이기고 있는 자'의 반대말은 '지고 있는 자'가 아니라 먼저 '두려워 (하는 자들)'인데, 형용사 delio의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 단어는 '두려운' 혹은 '비겁한' 이라는 의미로 이기려면 싸워야 하는데, 그 대상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두려워하며 따라서 비겁하게 싸움을 피하며 타협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뒤 '믿지 않'기 때문인데, 역시 형용사로 '믿지 않는 (자들,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기고 있는 자'는 개인적으로 주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힘을 주시지만, 이렇게 비겁하고 믿지 않는 이들은 다수의 사람들로 주님과 관계 없는 이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흉악한 자들'이 되는데 원어로 '가증하게 된'이라는 의미다. 믿지 않고 비겁한 이들은 그 삶의 여러면에서 가증하게 된다. 이들은 결국 마법을 좇고 우상을 숭배하는데, 진리를 거스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모든 거짓말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삶 자체가 거짓이다. 이러한 상태로 끝나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고 다시 회개케 해서 쓸 수 없다. 그들이 참예하게 될 몫은 '불못'이고 이것은 둘째 사망이다.

주님, 싸움을 싫어하고 회피하는 비겁한 이들이 되지 않고 이기며 또 정복하는 주의 백성 되게 하소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깨끗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