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 예수여 오고 계시옵소서 (계 22:12-21)

12절 '상'으로 번역한 말은 misthos로 '삯, 상, 보상, 벌' 즉 어떤 것에 대한 상당한 대응을 의미한다. 그래서 킹제임스역은 '보상'으로 번역했다. 만일 '상'만이라면 앞 11절 악한 이들에 대해서는 제외되는데, '보상'이라면 악한 것에 대해서는 벌로, 선한 것에 대해서는 상으로 주실 것을 말씀한다. 이러한 보상은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주시는데, 계시록 1장부터 언급되는 이 '행위 ergon'가 이제 마지막 장까지 이어진다.

13절은 다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계 1:8에는 단지 '알파와 오메가요' 그리고 21:6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제 마지막에 와서는 '시작과 마침'이라는 구절이 추가된다. 이 말씀은 소위 '윤회'라는 사상이 거짓임을 폭로하며 모든 것에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시작과 마침이 있음을 말씀한다.

14절은 원어의 사본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자기들의 두루마기들을 빠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꽤나 큰 것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 '두루마기 stole'는 '예복'을 의미하며 발까지 내려오는 매우 긴 옷이다. 이것은 내 자신의 어떠한 것이 아니라 '예복' 즉 주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이는 말씀으로 우리를 두른다는 의미다. 즉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다시 말해 주님의 명령들을 행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세상에 살며 더러워지는 그 옷을 빨아 희게 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살지만 거기 속하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약 1:27).

반면에 15절은 '그러나 그 개들과 그 점술가들과 그 음행자들과 그 살인자들과 그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을 좋아하고 있으며 지어내고 있는 그 모든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하는데, 이 모든 죄인들 앞에 '그 the'가 붙었다. 물론 이 '개들'은 생물학적인 개들이 아니라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무례하며 짖고 무는 불법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금수 같은 이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언급은 지금 이 계시록을 읽고 있는 이들 즉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로 '그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보응하실 것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믿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안과 기쁨을 준다.

의아한 것은 21:8에는 이러한 이들이 불못에 던져질 것을 말씀하지만 여기에는 단지 (성) 밖에 있을 것을 말씀하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불못에 던져지지 않고 다만 성 밖에으로 쫓겨날 것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앞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즉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이 당당히 '그 대문들을 지나 그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비해 이들은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을 의미한다.

16절은 '나 예수는 내 사자(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위에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다 나는 다윗의 그 뿌리 그리고 그 자손, 그 빛나고 이른 그 별이다'라고 기록하는데, 이제까지 '교회들'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즉 아마도 유대인들과는 이제 별로 관계가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말씀하시지만 여기는 구약의 '다윗의 그 뿌리 그리고 그 자손'을 말씀하신다. 주님은 구약과 관계 없이 중간에 갑자기 등장한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시며 언약 안에서 예언되셨던 바로 그 분이시다. 주님의 그 영원한 왕국이 새롭게 펼쳐지지만 과거 다윗에 대한 영원한 왕위와 관계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17절은 '그 영과 그 신부'가 읽는 이들을 초청하시는 말씀인데, 이 신부는 교회로서, 앞으로 미래의 우리 자신 즉 신부가 될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이다. 각자 한 사람은 보잘 것 없지만 성도들로 변화하여 단체로서 주님의 신부로 성장하면 그 위엄과 권위와 존귀는 그리스도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래서 '그 영' 즉 성령과 함께 현재 우리를 초청하신다.

22장의 '오다'는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인데, 그래서 '오라'는 명령은 '오고 있으라!'로 번역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오고 있으라!'는 명령을 처음에는 '그 영과 그 신부'가 하시지만, 이제 그 명령을 들은 이들 또한 (다른 이들에게) 동일하게 '오고 있으라!'고 초청하라 명하신다. 택함을 입었던 아니던 간에 이러한 초청은 계속되어야 하는데, 초청 받은 이들이 생명수를 취하는 것은 그들에게 달렸다.

20절의 '속히 오리라' 역시 '내가 반드시 속히 오고 있다'인데, 그에 대한 성도들의 화답 역시 '아멘 주 예수여 오고 계시옵소서'이다. 지난 2천년 동안 주님은 아직도 오지 않으셨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오고 계시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으시고 가까우시다 (빌 4:5).

지금도 오고 계시는 주님을 믿으며 주께 '마라나타'라고 고백함으로 주님의 오고 계심을 믿음으로 앞당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