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말씀을 듣는 복을 받고 또한 같은 축언을 하는 우리 성도들 (엡 1:1-14)
에베소서는 꽤나 익숙한 책이지만 원어로 공부하다 보면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게 된다. 보통 1장은 '예정하심'에 무게를 두지만, 오늘은 그 예정하심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혹은 무엇으로 그 예정하심이 나타났는지 배우게 되는데, 3절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개역개정은 번역했지만, '찬송하리로다'로 번역한 원어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되어 있어서 '하나님과 아버지'를 수식한다. 특히 이 말은 eulogetos로 eulogeo에서 온 말인데, eu와 logos의 합성어 즉 '좋은 말'이라는 의미로 우리 말로 하자면 '축언' 정도가 되겠다. 성경에서 많은 때 '복'이라는 말이 makarios 즉 행복하다 라는 말 아니면 이 eulogeo 인데, makarios가 '행복을 느끼다'라는 의미인 반면 이 eulogeo는 '복을 주다'라는 의미로 창세기 1장 28절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라고 기록한 구절에 이미 나오며 70인역은 동일하게 eulogeo로 번역했다.
그래서 3절은 원어에서 직역하면 '축언받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축언으로 우리에게 축언하셨습니다' 정도가 된다. '복'이라는 말에 비해 매우 느낌이 다른데, '복'이라는 말이 이미 많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먼저 '좋은 말'을 해주셨는데,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영적인 축언'을 받았다.
4절은 '곧 창세전에..' 라고 하며 이러한 '복' 혹은 '축언'이 무엇인지 말씀하는데, 소위 '예정' 혹은 '미리 선택하심'이 바로 이 '축언'을 통해서 였음을 밝히며, 이는 곧 '말씀' 즉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되는 것이다. 즉 이 모든 복과 은혜는 결국 태초 이미 창세전에 말씀하신 은혜의 말씀, 그 축복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서 시작되었으며, 이제 시간 안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주님의 피로 속량하시고 범죄함들에 대해 용서를 받은 것이 드러난 것이다 (7절).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러한 축언 받은 우리는 또한 다른 이들을 축복 혹은 축언한다.
그런데 이러한 축언이 우리 삶 속 현실에서 실재가 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13절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서 그 거룩한 그 약속의 그 영을 인침 받았다고 말씀한다. 즉 이 실재가 우리 삶 속에서 경험되려면 '믿음'이 필요한데, 그 믿음은 이미 우리가 그 영으로 인치심을 받았고, 현재는 아직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지만, 14절 (앞으로 우리가 받을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심을 말씀한다. 이것은 '그 획득의 속량 안으로 (원어)' 즉 이미 이루시고 얻으신 것에 대해, 주님이 치루신 속량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할 '속량'을 위해, 그리고 '그의 영광의 찬미 안으로' 즉 우리가 그 기업을 경험하며 누림으로 주님을 찬미하게 될 것을 말씀한다.
주님,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성령이심을 조금씩 깨닫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통해 우리 안에서 보증이 되셨다는 의미를 더 깊이 깨닫기 원합니다. 주님의 그 부드러운 음성을 듣기 원하고, 죄들과 허물들을 사하시고 그 속량하심이 우리의 속량으로 경험되기 원하시는 주의 좋은 말씀이 오늘 믿는 이들의 심령을 울리게 하소서. 주님께 감사드리며 찬양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