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해 죽어 있음, 그 많은 사랑 (엡 2:1-7)

영어본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번역본들이 1절을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혹은 우리말 성경 처럼 '여러분 또한 여러분의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도로 번역했다. 원어에는 '죽었던' 혹은 '죽은' 즉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되어 있고, '살리다'라는 말은 없다. 즉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인데, '살리셨도다'는 번역인들이 추가한 것이다. 아마도 앞서 1:20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가 여기까지 수식한 것으로 여긴 것 같은데, '그리스도'는 명사 여격으로 되어 있는 반면, 여기 '너희들'은 대명사 대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너희들'을 수식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 부분은 저자가 같은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를 봐야 하는데, '죄에 대하여 죽은'의 '죽다'가 시제만 다르게 되어 있다. 따라서 1절을 바르게 번역하면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허물들과 죄들에 대해 죽어 있습니다'가 된다. 이것은 5절도 동일한데, '허물로 죽은 우리를'이 아니라 '허물들에 대해 죽어있는 우리들'이라 해야 정확한 번역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지금 허물들이나 죄들 '안에' 죽어 있지 않다. 대신에 그들에 '대해' 죽어 있다.

그래서 2절은 '한때 pote'라는 말을 쓰는데, 과거 우리들 역시 우리 마음과 생각이 원하는대로, 하지만 사실 그 이면으로는 불순중의 아들들 안에서 일하고 있는 그 영 즉 공중 권세를 잡은 자를 따라 살았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천연적으로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2-3절).  이 '진노'라는 말은 무서운 말인데,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이고 지난 계시록 처럼 완전히 끝장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4절은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 큰 사랑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선언한다. 여기의 '사랑'은 모두 '아가페' 혹은 동사형 '아가파오'인데, '큰 사랑'은 pollen agapen 즉 '많은 아가페'로 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형용사가 보통 수식하는 명사 뒤에 오는데 여기에는 앞에 와 있다. 이것은 이 '많은 사랑'이 서로 다른 두 단어가 아니라 함께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 혹은 많은 아가페는 그 자체가 크고 많다. 그래서 그 은혜는 '풍성'하시다 (7절).

5절은 위의 설명과 같이 '허물들에 대해 죽어 있는 우리를 그리스도에 대해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에 대해 구원받았습니다.)'가 되는데,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함께 살기 위해서는 먼저 허물들에 대해 죽어 있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먼저 달리는 것이 요구된다. 그래야 비로소 살 수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또한 6절 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천상에 앉히시어'가 가능하게 된다. 교회를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아직 내가 죄들과 허물들에 대해 살아있다면, 즉 그러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을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이 되고 또한 주님과 함께 일으켜지고 천상 안에 앉지 못한 것이 된다. 이러한 인식은 영 안에서 이미 이루었지만 현실에서 행하며 누려야 하는데, 죄들과 허물들에 대해 온전히 죽어있어야 바로 '그 많은 아가페'를 누릴 수 있게 되며, 그래서 7절은 '이를 인해 오고 있는 세대들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들 위에 친절함 안에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보여 주려 하심 입니다'라고 한다.  우리가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보'기 위해서는 과연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주님, 놀라운 그 많은 아가페,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우리는 많이 놓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히려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리며 허단한 것들을 추구합니다. 주인님, 에베소서의 이 영광스러운 신앙의 삶을 우리에게 열어주시고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보게 하소서. 천연적으로 불순종하는 우리를 순종하게 하는 믿음 더욱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