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근원과 방법과 목적 (엡 2:8-13)

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하며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말하고 있다. 사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기 보다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인데, 소위 '오직 믿음'이라는 성경에 없는 말 때문에 '우리의 믿음'으로 받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믿음도 은혜도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말성경은 '믿음으로 인해 은혜로' 킹제임스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등으로 번역했고 영번역은 보통 'by grace, through faith'로 번역했다. 그래서 한글은 마치 '믿음을 가지고, 은혜로 인해' 정도의 인상을 주지만, 원어는 좀 다른데, 영번역의 by나 한글 번역의 '믿음으로 with'에 해당하는 전치사 meta가 없다. 다만 이 '은혜'는 여격으로 히브리서 '믿음으로'와 마찬가지로 은혜에 '대하여'를 의미한다. 즉 '믿음을 통해 dia' 구원을 받지만 (사실 구원을 '받는다'는 말도 원어에는 수동태로 되어있어서 '구원되어지다'이다), 그 근원은 바로 '은혜'이며, 이는 동시에 (간접적) 목적인 것이다. 히브리서의 믿음도 '여격' 즉 간접적 목적(여격)이고 또한 이 은혜 역시 목적이며 근원이다.

이에 대해 9절은 더 분명히 말하는데 원어로 '행위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정도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믿음'과 '행위들'이 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본래 근원이 어떤 것임을 말하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믿음과 행위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서 진정한 믿음이 있으면 행위들이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인데, 따라서 이 '행위들' 역시 믿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10절은 다시 이 '행위들'을 말하면서 '선한 행위들'이 또한 주님의 창조 목적이심을 분명히 한다. 이 '은혜'와 '믿음'과 '행위들'은 함께 하는데, 그 순서가 바뀌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행위들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먼저 그 은혜로 인해 믿음을 소유하고 또한 그 은혜를 따라 그 은혜에 대해 구원을 누릴 때 바로 선한 행위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10절에는 '만드신 것 poiema'과 '창조하심 ktisthentes' 이라는 말이 있는데, 물론 '창조'가 먼저라서 그 원래 목적이 '선한 행위들'이지만 속량이 필요했기에 또한 '만드심'이 있다. 이것은 '우리'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며, 우리로 그것들 (선한 행위들) 안에서 걷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우리'가 소위 '선민'인 유대인들이 아니라 11절은 '이방인들'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도 없고 그분을 알수도 없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그 언약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계 없는 삶에 소망이 전무했던 존재들이었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13절은 '이제는 nuni'이라는 말로 반전이 있음을 말하는데, 원어로 직역해서 '이제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때 멀리 떨어진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 계속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과거에는 '그리스도 밖 (12절)' 이었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워졌음을 말한다. 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졌음은 물론, 유대인들 즉 선민들 혹은 성도들과 가까워졌음을 말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구원의 작자시며 은혜의 근원이심을 봅니다. '전에는'이 끝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오늘 그 은혜를 더 누리며 더 알기 원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으로 더 들어가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