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평안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함께 연결됨으로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감 (엡 2:14-22)

14절은 '그는 우리의 평안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원어 gar는 영어로 for에 해당하며 '대개' 혹은 '~때문이라' 정도로 번역되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안 혹은 화평이시기 때문임을 말씀한다. 요 14:27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또 부활 후 처음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샬롬' 즉 평안을 물으셨는데, 주님 자체가 우리의 평안이심을 말한다. 그런데 평안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선민이라 일컬었던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이 이방인들 혹은 개들이라 업신여김으로 이방인들인 우리 또한 그들에 대해 적대관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 그것은 '그 담의 막아나눔 그 적대감을 허물어 버리'신 것인데, 15절은 그 방법을 '그의 육체 안에서' 그리고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 (16절)' 하셨음을 말씀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단순히 죄와 죄들을 사하시고 속량하심만이 아니라 '규율들 안에 그 계명들의 그 법을 무효화시켜 버리'신 것인데, 따라서 율법을 추구하던 유대인들과 그렇지 못하던 이방인 사이에 '그 둘을 그분 안에서 한 새 사람 안으로 창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따라서 그것은 '평안을 만들고 있'다고 (현재진행형) 기록한다. 그런데 단지 '평안'만이 아니라 아예 16절은 '둘을 하나님께 한 몸 안으로 화목케 하'셨음을 말하는데, 과거 있었던 적대감 혹은 원수됨이 '십자가를 통해 그(십자가) 안에서 그 적대감을 죽여버리셨'다고 말씀한다. 즉 십자가 사건은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17절은 '그리고 그가 오셔서 멀리 (떨어졌던) 여러분에게 평안을 그리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안을 전도하셨습니다 (원어 참조)' 라고 하는데, 주님의 오심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모두에게 평안을 전도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전도'는 '유앙겔리사토' 즉 '복음을 전파하다'와 같은 말이다. 주님의 복음은 바로 하나님과의 평안이며 또한 사람들 간에 평안이다. 그래서 18절은 그리스도를 통해 '둘'인 우리가 '한 영 안에서 아버지께로 접근함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분명한 말씀이 있는데도 아직까지 유대인들을 박해하거나 동시에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이 선민이라고 이방인들을 업신여긴다면 그리스도의 공로를 거스르는 것이 된다.

이방인들은 이제 하나님께 대해서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 낯선 사람들도 외부인들도 아니며' '성도들의 함께 한 시민들이며 하나님의 가족들'이 되었다 (19절). 이들은 20절에 연결되어 '(그들은 whom) 그리스도 예수 그가 모퉁이 돌 되시어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그 기초 위에 세워진' 사람들임을 말씀한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이 기초를 닦아서 세운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즉 성도들임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 그 은혜의 궁극적인 대상과 목적은 바로 우리들이다.

바울은 이러한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연결되어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고 있음을 밝히는데 (21절), 22절은 '그 분 안에서 여러분도 영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안으로 함께 건축되어지고 있습니다 (원어 참조)'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21절과 22절 모두 '그 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점과, 우리는 건축물로서 개별적인 것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야 하고, 또 자라야 하며, 궁극적으로 '영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지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교회 생활이고 신앙 생활이다.

주님, 바울이 말하는 이 놀라운 비전을 우리도 동일하게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소서. 우리 생각대로 신앙 생활 하려 하지 않고, 교회를 부흥시켜려 하지 말고, 다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함께 연결되어 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이 볼 수 있게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