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을 지키기에 열심을 내는 것은 서로 묶인 것을 보는 것임 (엡 4:1-6)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주 안에서' 라는 말을 즐겨쓰는 바울은 이번 4장에도 역시 '주 안에서' 라는 말을 한다 (1절). 그런데 '주 안에서 묶인자'로 자신을 말하는데, '갇힌'으로 번역한 desmios라는 말은 원어로 '결박'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3절 '평안의 매는' 이라는 말에서 sun+desmios 즉 '서로 묶이다'라고 또 쓰였다. 에베소서는 소위 옥중서신 즉 감옥에 갇힌 때에 쓴 서신 중 하나인데, 그의 몸은 갇히고 묶였지만, 그 묶임은 '주 안에서' 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도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그의 사역 또한 지속된다. 더우기 상황상 시간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깊은 묵상을 통해 보석과 같은 계시를 선포하는 이 에베소서를 쓰고 있다.
'권하다'라는 말은 성령께서 '보혜사' 즉 파라칼레오 하시는 분일 때 쓰는 말로, 위로하다, 권하다, 용기를 주다 등을 의미하는데, 현재 그리스 말에서는 영어의 please에 해당한다. 바울은 '주 안에서' 그들에게 명할 수도 있었지만 겸손하게 에베소 성도들을 권하고 있다 (현재진행형), 그 권함은 '여러분이 불려진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기'인데, 이 편지는 에베소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로, '교회'라는 말 자체가 '밖으로 ek 부르다 kaleo'의 합성어이다. 즉 우리말 '교회'는 그 핵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 '교'는 종교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원래는 '부르다 (소출)'의 의미로서 주님께서는 유대교를 나와 또 다른 종교를 만드시기 원하신 것은 아니었다.
2절은 그 걸음을 걷는 것에 대해 '모든 겸손함 그리고 부드러움과 함께, 장고함(큰 고통, 긴 인내, makro thumia)과 함께, 아가페 안에서 서로 참아내어짐으로' 걸을 것을 부탁하고 있다. 걷기는 걷지만 마음대로 걷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모든 겸손함과 부드러움과 함께'해야 하는데, 우리는 은혜로 구원되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들을 선호하지만 사실 '카리스마'라는 말 자체가 '은혜'에서 나왔다. 진정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은 먼저 겸손하고 부드러운 이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한다. '장고함과 함께, 아가페 안에서 서로 참아내어짐'이 필요하다. 우리말에 없는 '장고'라는 말을 내가 만들어 낸 것은 이 원어에 해당하는 말이 없기 때문인데, 단지 '인내' 혹은 '오래 참음' 정도로는 그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사랑은 오래 참고'에서도 쓰인 말로서, 사랑 즉 아가페에 대한 정의 혹은 아가페의 어떠함을 설명할 때 제일 먼저 나온 단어다. 따라서 사랑 혹은 아가페의 첫째 덕목은 매우 긴~~ 인내 혹은 고통이다. 이것은 아가페로 정의되신 하나님의 어떠하심도 말해주는데, 하나님은 우선 '거룩'하시지만, 그 거룩 안에서 아가페로서 매우 오래도 참아오셨음을 밝혀준다. 그런데 이 모든 겸손함이나 부드러움 그리고 장고함 등은 세상에 대해서는 물론이지만, 아직은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교회 안에서 '서로 참아내어지는' 것이 필요함을 말씀한다. 이것이 우리가 '행해야' 혹은 걸어야 할 내용이다.
이 걸음은 3절에 계속되는데, '그 평안의 서로 묶임 안에서 그 영의 그 하나됨을 지키고 있는 것에 열심을 내십시오' 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이 '매는'이라는 말은 앞에 sun이 붙어서 다시 '공동'을 말하는데, 문자적으로는 '공동묶임'이다. 교회는 그 안에서 아무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동으로 묶여 있는 어떠함이며 이는 '그 평안'에서 온다. 그리고 그 공동묶임은 '그 하나됨'을 위함인데, 이는 '그 영'의 소유이다(소유격). 여기 '지키는 것에 열심을 내다'라는 말은 성도들이 해야할 것이지만, '그 영의 그 하나됨'은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이다. 성령의 하나됨은 이미 이루신 것이며 성도들은 이것을 지키는 데 열심을 내기 위해 서로 묶여야 한다.
4-6절은 원어로 직역하면 '한 몸 그리고 한 영, 여러분의 그 부르심의 한 소망 안으로 여러분이 부르심 받은 것 같이, 한 주, 한 믿음, 한 침례, 한 하나님, 그리고 만유 위에 그리고 만유를 통해 만유 안에 (계신) 아버지 (십니다)' 정도가 되는데, 이 '그 영의 그 하나됨'이 무엇인지 말씀한다. 먼저 '한 몸 그리고 한 영' 또 '한 소망' '한 주, 한 믿음, 한 침례'는 물론이지만 '한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곳에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정도로 번역됐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시라 세 분이시다. 다만 이 세 분 이 '하나'이시다. 다시 말해 이 세분이 '한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결국 이 모든 하나됨은 '한 하나님과 아버지'로 귀결되는데, 이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영의 하나됨임을 말씀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지키는 것에 열심을 내야한다.
주님, 개인 구원을 우선시 하는 잘못된 교리를 거부합니다. 나의 구원은 주님의 은혜를 말미암고, 이는 바로 한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임을 봅니다. 이를 위해 성도들과 공동으로 묶여졌음을 보기 원합니다. 이 가운데 묶이고 결박된 무한한 자유를 누리기 원합니다. 그 부르신 목적으로 우리를 부르셨음을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