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하는 기도,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행사하는 믿음 (엡 6:18-24)
18절은 원어로 'dia 통하여' 라는 단어로 시작하는데, 보통 이 단어는 첫 문장 보다는 중간에 위치한다. 그래서 18절은 새롭게 시작되는 문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앞서 17절과 연결하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그래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통해'를 앞 구절과 연결해 보면, 하나님의 영이신 말씀과 그 모든 전신갑주를 취하고 받고 입는 것은 바로 이 '모든 기도와 간구를 통'해야 함을 본다. 특히 바로 앞 구절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와 간구를 통'해서 받아야 한다. 이 구절이 뒤 '모든 때 안에 영 안에 기도하며 그리고 이것 안으로 모든 인내와 모든 성도들을 위해 깨어 있으며'에도 이어지는 것도 같기는 하지만, '기도하다'가 둘이나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연결하기는 조금 이상하다. 만일 이어진다면 '기도와 간구를 통해 기도하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 안으로' 부분인데, 기도할 때 '모든 때 안에' 즉 항상 그리고 '영 안에' 해야 하며, '이것'이라는 말은 소유대명사 목적격 3인칭 단수로 되어 있어서 그 목적이다. 앞구절들에서 3인칭 단수로 되어 있는 것을 찾아보니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임을 보는데, 따라서 기도와 간구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떨어질 수 없는, 아예 말씀 자체가 목적이 된다. 보통 '간구'는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 구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 그렇게 이해하지만,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간구의 목적은 다시 말해 말씀 즉 로고스이다. 이러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며 인내하며 깨어 있을 수 있는데, '인내'라는 말은 '지속하다 버티다 견디다' 등을 의미하며 위 구절들과도 이어진다.
19절 역시 바울 자신을 위한 기도 제목으로 '나의 입의 열림 안에 담대함 안에 내게 말씀을 주사 그 복음의 그 신비를 알리게 하시기를' 이라고 부탁한다. 바울은 구약에 정통했고 많은 것을 계시를 통해 깨달았지만 그는 더욱 더 말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그 복음의 그 신비를 알리기' 위함이었는데, 바울은 왜 이러한 것을 놓고 기도했을까? 말씀이 영이고 영은 살리며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20절은 다시 한번 자신의 묶임을 언급하는데, '이를 위해 내가 사슬 안에 (있는) 대사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내가 담대할까 합니다 나를 말하게 하는 것 처럼' 이라고 한다. 바울은 자신이 사슬에 묶인 상황에 대해 불편하거나 부끄럽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상태에 대해 자신이 '대사'임을 선포한다. 물질적인 사슬은 오히려 그리스도께 온전히 묶인 것으로 해석하여 주님의 종된 자신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그는 담대하기 원했는데, 여기는 가정법으로 되어 있어서 그 역시 자신이 처한 현실이 육신적으로는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님을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사슬은 그를 이렇게 '(반드시 dei) 말하게' 한다.
21절은 아마도 이 편지를 전하는 '주 안에서 사랑받는 형제이며 신실한 집사인 두기고'에 대해 말하는데, 22절은 '이것을 위해서' 바울이 그를 에베소서 보낸다고 말한다. 물론 이 에베소서를 전달하는 것이지만, 21절은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도 나에 대한 것들, 내가 무엇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두기고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할 것입니다' 라고 한다. 바울이 메여있는 것과 여러 정황들은 물론이지만, 그럼에도 바울이 '행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알게 한다는 것인데, 여기 '행사하다'는 보통 쓰는 '행하다, 하다, 만들다'를 의미하는 poieo가 아니라 prasso라는 말이 쓰였다. 이 말은 '행하다, 행사하다, 성취하다, 어떤 상황에 있다, 요구하다' 등 여러 의미가 있는데, 바울은 그 메임 속에서도 단지 무언가를 '행'하 것만이 아니라 '대사'로서 '행사'를 하며 그 가운에 무언가를 성취하고 있었다. 상황은 결과를 낳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그러한 상황을 거스르고 '행사'하는 능력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고 누릴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말을 하는 목적은 바울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가 혹은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가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분이 우리들에 대한 것들을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가 여러분의 마음들을 위로하고 있기 위함'임을 22절은 말한다. 이 '위로하다'는 '파라칼레오'로 성령이 신자들에게 하시는 일이다. 그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처럼 성도들을 위로하는 사역이었다.
23-24절은 '평안이 형제들에게 그리고 아가페가 믿음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있기를) 그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불멸 안에 아가파오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이라는 마치는 인사이다. 여기에 '평안' '아가페' '믿음' 그리고 '은혜'라는 말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의 수혜자들은 바로 '형제들'이며 주님을 '아가파오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다. 특히 '변함없이'라고 번역된 말은 '불멸'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주님의 생명으로 영생을 얻은 불멸의 존재들이며, 따라서 그러한 불멸함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다.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은 변할 수 있지만, 그 '불멸 안에' 있는 아가페는 변함이 없다.
주님, 말씀은 항상 기도와 함께 가는 것을 다시 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과 항상 함께 한 바울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승리하는 귀한 형제의 본을 봅니다. 주의 사랑 그 아가페로 저를 묶으소서. 2019년 마지막 날이 주 안에서 아름답게 마무리 되기 원합니다.